[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389>혼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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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 ―전영미(1978∼ )

돌은 돌의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의 말을 하고
바람은 바람의 말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말만 하고
나는 내 말만 한다

한데 뒤섞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당신을 향하던 내 말은
당신에게 가기도 전에 뒤섞이고 만다

서로의 말은
한 번도 서로의 말인 적이 없다

당신의 말은 당신의 것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돌은 돌의 말을 하고/나무는 나무의 말을 하고/바람은 바람의 말을 한다’, 언어의 첫 번째 기능은 의사소통이라지만 실제로 우리는 언어의 표현적 기능에 자주 매달린다. 의사소통과 상관없이 자기의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고 싶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음악가나 화가가 작품을 만들 때 꼭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려기보다 제 영혼이나 의식에 파동 치는 격정, 슬픔, 불안, 환희, 절망 등을 표현하려는 것처럼, 문학도 자주 순전한 표현적 욕망을 위해 언어를 부린다. 그런데 일상에서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어야 할 언어가 표현적 기능만 수행할 때, 자기표현의 욕망만을 담을 때, 언어는 사람들을 연결해주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 뿐이다.

‘당신은 당신의 말만 하고/나는 내 말만 한다’, 말의 주체는 자기를 표현할 뿐이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의사가 없다. 상대의 말에 결코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인터넷 논객들처럼 말이다. 서로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그들! 무상급식에 관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홍준표 경남 도지사의 대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언어의 소통 욕망보다 표현 욕망이 훨씬 강할 때, ‘우리는/영원히/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당신’은 화자의 정인(情人)일 수도 있고 세상 일반일 수도 있겠지. 이 상황을 화자는 절망적으로, 일면 초연히 받아들인다. 메시지가 명료한 시다.

황인숙 시인
#혼선#전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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