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평양서 벌어졌던 김정은 암살미수 사건 전말

주성하 기자 입력 2014-11-04 03:00수정 2014-11-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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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암살 시도가 있었던 2012년 11월 3일의 모습. 김정은을 따라 모두가 웃는 가운데서도 장성택(김정은 왼쪽)만 무거운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주성하 기자
평양에서 김정은 암살 시도가 있었던 날은 2년 전인 2012년 11월 3일이었다.

이날 김정은의 일정은 완공을 앞둔 평양 문수거리 복합편의시설 류경원과 인민야외빙상장, 롤러스케이트장을 시찰하는 것이었다. 이 시설들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십 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당일 아침 한 남성이 류경원 인근의 누운 향나무 아래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던 장전된 기관총을 발견해 즉시 보위부에 신고했다.

명백한 김정은 암살 시도였다. 암살자는 김정은이 세 곳을 걸어서 둘러보는 기회를 노렸던 것으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예정대로 류경원을 찾은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 극비인 김정은의 동선을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데다 세계에서 총기가 가장 엄격하게 통제되는 평양에 해외에서 기관총을 밀수해 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배후에 거물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곧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지목됐다. 김정은이 시찰한 시설도 장성택 휘하의 인민보안부 내무군이 건설한 것이었다. 현장에서 김정은을 영접한 사람들도 내무군 장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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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턱대고 장성택을 체포할 수는 없는 일. 이때부터 은밀하고도 끈질긴 미행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장성택은 갑자기 모습이 사라졌고 남쪽에선 숙청설까지 나왔다. 모습을 다시 드러낸 이후에도 이듬해 4월 중순까지 불과 열세 차례만 언론에 나타났다. 2012년엔 김정은의 시찰을 무려 102회나 따라다녔던 그였다.

김정은 암살미수는 지금까지도 북에서 극소수만 아는 철저한 극비 사안이다. 기자 역시 오래전에 정보를 받고도 정보원의 안전 때문에 지금까지 보도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격을 주지만 이후 북한에서 나타났던 비정상적 행태를 설명해주는 핵심 퍼즐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 김정은 관저와 별장을 비롯한 전용 시설 30여 곳에 장갑차 100여 대가 새로 배치됐다. 한 달 뒤 우리 당국도 수상한 낌새를 챘다. 12월 초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전과 달리 최근 김정은이 현지시찰을 하면 중무장한 경호원이 등장하고 행사장 주변에 장갑차까지 출동한다”며 “북한에서 큰 시위가 있었거나 인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었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전에는 김정은 시찰 시에 경호원이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무장도 권총뿐이었다. 하지만 암살 시도 이후에는 자동총을 메고, 헬멧까지 쓴 김정은 경호원들이 노골적으로 사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골프 가방이나 기타 가방을 멘 경호원들도 사진에 등장했다. 가방 안에는 기관총이나 저격총, 수류탄 등 중무장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불안해진 김정은은 11월에 국가안전보위부를 두 차례나 방문해 적대분자 숙청을 지시했다. 같은 달 갑자기 ‘전국 분주소장 회의’와 ‘전국 사법검찰일꾼 열성자 대회’가 3일 간격으로 잇따라 열렸다. 분주소장 회의는 13년 만에, 사법간부 회의는 30년 만에 열린 것이었다. 김정은은 이 대회에 “소요·동란을 일으키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는 불순 적대분자와 속에 칼을 품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가차 없이 짓뭉개 버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동시에 ‘불순분자 소탕 캠페인’이 시작됐다. 모든 기관들은 수시로 ‘불순분자 검거 실적’을 제출할 것을 요구당했다. 탈북자들은 당시 내부 공포 분위기가 극에 이르렀다고 증언했다. 북한은 이듬해에는 1월부터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면서 4월 말까지 대내외의 긴장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암살 시도 이후 김정은 경호 반경도 두 배로 늘었다. 과거엔 저격 가능 범위를 2km로 보고 그 안에 개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면 암살미수 사건 이후엔 집중경호 구간이 4km로 늘었다. 휴대용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고 보는 2차 경호 범위도 20km에서 40km로 늘었다.

암살 시도가 김정은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김정은의 군부에 대한 불신도 극에 달해 군 수뇌부가 수시로 물갈이 됐다. 이듬해 7월까지 북한 군단장의 절반 이상이 교체됐다. 북한 장성들의 계급장 널뛰기가 시작된 것도 이때쯤부터였다.

요즘 김정은의 전용기 애용을 두고 남쪽에선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분석하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차량 이동은 경로가 길고 시간이 많이 걸려 일정을 미리 알고 폭발물을 숨겨놓으면 막기 어렵다. 반면 전용기는 공항과 관계자 몇 명만 통제하면 된다.

물론 남쪽의 레이더엔 김정은 전용기가 포착된다. 하지만 김정은이 한국군 코앞에서 목선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는 미국이나 한국이 자신을 암살함으로써 ‘북한 붕괴’라는 혼란스러운 사태를 만들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진 듯하다. 반면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은이 3년 넘게 북한 절반이 넘는 지역을 방문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오히려 내부를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김정은 암살 시도자가 장성택이었는지, 그의 숙청이 이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장성택이 처형되고 난 뒤 생전의 그가 김정은 옆에서 뒷짐을 진 사진이 남쪽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렇게 오만했으니 눈 밖에 났다는 식이었다. 그게 바로 2012년 11월 3일자 사진이다. 그날 장성택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젠 영영 땅에 묻혀 알 길이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암살미수#장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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