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62>나쁜 여자의 사고방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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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지지 못한 아들 하나를 빼곤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그가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6년간 키운 아들이 병원에서 바뀐 남의 아이라는 것.

법정에서 6년 전의 간호사가 “일부러 그랬다”고 고백한다. 행복해 보여서 아이를 바꿔놨단다. 이 대목에서 상상하게 된다. 혹시 간호사가 가난한 집 아이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이만은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도록.

하지만 예상은 빗나간다. 간호사가 말한다. “그때는 고민이 많아서 화를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 풀었습니다. 가장 비싼 병실이었고 남편은 일류 기업에 다니고 기뻐해주는 가족도 옆에 있고 거기에 비하면 나는….”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한 장면이다. 감독은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바닥까지 파헤친다. 어떤 기분이었느냐는 질문에 간호사가 대답한다. “마음이 놓였어요. 나만 불행한 게 아니라는 기분이었죠.” 나쁜 여자의 속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남성의 ‘내가’와 달리 여성의 출발점은 ‘네가’인 경향이 있다. 남성은 ‘내가 널 능가하겠어’ 하고 다짐하는 반면 여성은 ‘네가 나보다 행복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타인을 보는 관점의 바탕에 깔고 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에게 분풀이를 하는 나쁜 인간이라도, 남자가 ‘내가 닥치는 대로 해를 끼치겠다’는 쪽이라면 여자는 ‘너만 행복한 건 안 돼’ 쪽인 셈이다. 더 행복한 상대를 보느니 차라리 끌어내려 함께 불행해야 속이 시원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런 나쁜 여자 유형을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중위권 성적의 여학생이 옆 반 1등 친구의 노트를 숨기고는, 그 아이가 당황해 우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피트니스클럽에선 중년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성을 둘러싸고 말로 뭇매를 놓는다. “그만 빼라”는 것이다. ‘내가 너만큼 노력하겠다’보다 ‘네가 더 날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 간호사는 진실을 털어놓은 계기를 “지금 행복하니까 그때의 일을 속죄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가 바뀐 두 엄마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우리는 끝없이 고통을 받을 텐데 그 여자는 시효가 지났다고 사과로 끝이라니.”

웬만한 남자 같으면 어떻게든 ‘내가 고통을 안겨주겠다’고 복수를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두 엄마는 몇 번이고 되뇐다. “평생 용서 안 해.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너는 평생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라는 의미다. 평범한 심성을 가진 여성이라면 대개 이 수준을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한상복 작가
#여성#타인을 보는 관점#분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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