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63>계산대 앞에 줄선 여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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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계산대 앞에 유독 길게 늘어선 줄. 대개는 서투른 계산원 아줌마나 바코드 기계 작동 불량, 문제 있는 상품 탓이다. 하지만 그 밖의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여자 손님이다.

혼자 온 여자 손님이 많은 줄이 더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여자 손님의 계산이 부부 혹은 남자 손님에 비해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눈썰미가 있다면 왜 그런지 쉽게 알 수 있다. 상당수의 여성이 지갑에서 카드를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거의 똑같이 생긴 수많은 적립카드와 할인카드, 신용카드 중에서 마트용 카드를 골라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해당 카드만 챙겨서 장을 보러 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퇴근길 혹은 외출에서 돌아오는 여성이라면 양상이 거의 비슷하다. 그들은 할인이나 적립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트 전용 카드를 기필코 찾아내 사용하고 만다.

조금 더 살펴보면, 그들의 계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더욱 고차원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가방이 문제다. 가방에서 지갑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까다로운 일이다. 거의 모든 여자 가방은 남자의 그것과는 달리 수납공간의 구분이 없다. 한 공간에 다양한 물건이 들어가 뒤섞인다.

설상가상으로 별의별 물건이 다 들어간다. 지갑, 향수, 작은 빗, 립글로스, 볼펜, 화장품, 명함지갑, 껌, 휴대전화, 예비 배터리, 티슈, 손거울, 수첩, 열쇠고리, 비상용 머리끈, 눈썹칼, 선글라스, 교통카드 케이스, 이어폰, 핸드크림 두어 개, 네일 크림, 책 한 권, 생수, 커피 캔….

게다가 구석구석 숨어 있는 온갖 영수증들, 심지어 작년 겨울 코트에서 떨어진 단추까지. 대개는 그 주인조차 가방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들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가방 속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뭐가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 대비해 여러 가지를 갖고 다녀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걱정이 많은 존재라서 그렇다. 지갑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종류의 카드들 또한 언제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 점에서 여자의 가방은 물건을 보관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셈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클로드 코프만은 가방을 ‘여자들에게 있어 제2의 집’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걱정과 준비성을 마트에서 계산할 때 다른 방식으로 발휘해 보면 어떨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카드 또는 현금을 미리 준비해 놓는 쪽으로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쪽으로 준비성을 보여주는 여성은 드물다.

한상복 작가
#여자 손님#적립카드#할인카드#신용카드#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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