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재준 국정원장, 지휘책임 지고 사퇴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5일 03시 00분


어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위조 사실을 보고받았다는 증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건의 ‘몸통’으로 국정원 수사팀장인 이모 대공수사처장을 지목했다. 국정원장을 비롯해 2차장-대공수사국장-부국장으로 이어지는 지휘부 차원의 조직적인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이에 따라 남재준 국정원장과 대공수사국장은 물론이고 수사와 기소를 담당했던 검사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검찰은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대공수사국의 부국장(2급)과 대공수사국장(1급)을 불러 조사했으나 남 원장에 대해서는 서면조사도 하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것은 도청사건, 댓글 사건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으며 세 사건 중에서 국정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국정원 측은 수사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일부 직원이 묵비권을 행사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권모 과장의 자살 기도 이후 검찰 수사는 한동안 벽에 부닥쳤다, 국정원의 조직체계상 보고를 받지 못해 알지 못했다는 것도 수긍하기 힘들지만 국정원은 증거 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자체 감찰 등으로 관련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또 이 사건의 초기 대응을 잘못해 논란을 부추긴 데 이어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를 노출시켜 세계 정보기관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된 것에 대해서도 남 원장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남 원장은 수사 결과로 법적 면죄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청와대나 여권에서도 지금 국정원장을 경질하는 것은 지방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정보기관이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증거 조작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지방선거의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서천호 2차장이 어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그렇게 끝낼 일이 아니다. 남 원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경우 그동안 박 대통령이 강조한 국정원 개혁의지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앞서 국정원 김모 과장과 중국 국적의 협조자를 구속기소한 데 이어 이 처장과 이모 주(駐)선양 총영사관 영사를 불구속기소하고, 권 과장은 치료가 끝날 때까지 기소중지 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불기소 처분한 이모 부장검사 등 검사 2명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남재준#공무원 간첩 사건#증거 조작#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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