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변신원]김치녀를 아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4일 03시 00분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다. 정치갈등, 지역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 갈등의 내용이 다양하고도 깊다. 그것도 모자라 더 심각한 갈등이 더해졌다. 성별갈등이 그것이다. 원래 아옹다옹하는 게 남녀 관계려니 하기에는 문제의 정도가 심하다.

인터넷을 열면 어렵지 않게 이들의 거친 싸움을 볼 수 있다. 남성들이 ‘김치녀’(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사귀며 사치를 일삼는 여성)나 ‘보슬아치’(여자로 태어난 것을 벼슬로 알아 남성에게 군림하려 하는 여성) 같은 말로 여성을 비하하면 여성들은 ‘루저’ ‘찌질하다’고 대거리를 한다. 상호 비방과 혐오 속에는 ‘이기적인 여성’이 주요 문제로 등장한다. 저출산도, 직장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도, 심지어 성범죄율이 높아지는 것도 다 그녀들 탓이다.

이는 일부 개념 없는 여성의 행동을 과도하게 부풀려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모든 여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성 혐오’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런 사회현상은 병리적이다. 이 격 떨어지는 비하 문화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아이들에게도 노출된다. 인간관계 맺기와 합리적인 소통을 배워야 할 그 시기에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그에 준하는 문화적 성숙은 이루지 못했다. 사회는 경쟁과 성과만 요구한다. 이때 생산되는 억압과 스트레스가 문제다.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책임을 전가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김치녀가 된 것이다. 스팩은 잔뜩 쌓았지만 일할 곳을 찾을 수 없는 젊은이의 씁쓸한 3포(취업, 결혼, 출산의 포기)와 이 같은 문제를 그나마 결혼으로 넘어서 보려는 여성들의 짠한 몸부림은 그들의 무한한 좌절과 맥을 같이한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의 본질을 보기보다 차라리 내 삶이 김치녀 때문에 불편하다는 과장, 왜곡,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른다. 이런 병리적 사고가 통용되는 사회는 치유의 기능을 잃는다. 비뚤어지게 표출하는 원한의 감정은 삶의 에너지를 송두리째 부정적으로 변화시켜 버릴 심각한 위기로 우리를 끌고 갈 수도 있다.

전례 없는 성별갈등을 벗어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갈등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여 오해는 풀고 해결할 건 해결하자. 그리고 어떻게 화해하고 사랑해야 할지 본질적 질문을 던지자.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성별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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