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원택]‘새 정치’는 죽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지역주의-이념대결 탈피할 새정당 여망이 ‘안철수 바람’
선거 앞두고 급조된 통합신당, 새정치 구현으로 보긴 어려워
민주당내 거센 개혁저항 극복 安의원 단기필마로 가능할지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것이 한국 정치라고 하지만, 독자적으로 창당 준비를 하던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성공적으로 벤처기업을 일궈낸 안 의원에게도 정당 창당은 벤처기업 설립보다 어려웠던 모양이다. 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던 민주당으로서나, 새로운 정치라는 명분은 가졌지만 선거를 앞두고 마땅한 후보자감을 찾지 못해 속을 태우던 안철수당으로서도 눈앞에 다가온 지방선거를 위해 합당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보다.

야권의 신당 창당 결정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전보다 높아진 듯하다. 지방선거가 사실상 새누리당과 신당의 일대일 대결 구도로 변하면서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게 됐고, 그만큼 선거판이 흥미로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비판적이거나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유권자들에게는 무기력해 보였던 민주당이나 그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었던 안철수 신당보다는 두 세력이 합쳐 만든 통합신당이 지방선거에서 고려해 볼 만한 대안이 될 뿐만 아니라, 잘만 하면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이 결정을 반기는 것 같다. 그런 만큼 새누리당이나 그 지지자들은 안 의원의 합당 결정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의 성패라고 하는 눈앞의 정파적 이해관계와 별개로 그간 새 정치를 외친 안 의원과 민주당의 합당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안철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무렵이었다. 안철수 바람은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과 거부를 뜻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안 의원이 지지했던 박원순 후보는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본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처럼 안철수 바람은 지역주의와 이념 대결에 의존한 거대정당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유권자의 요구와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좀더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정당정치를 이뤄보자는 소망을 담고 있었다.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 정당들과 차별화된 새로운 정당에 대한 여망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표출됐던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안 의원이 독자적 대안세력 결성의 목표를 접고 기존 정치세력과 힘을 합치기로 한 결정은 그에게 걸었던 새 정치의 여망을 제대로 구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상당수 국민은 신당의 창당이 그동안 안 의원이 외쳐 온 새 정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람이 거셌던 만큼 행여나 이번에는 폐쇄적인 정치의 벽을 허무는 제3세력이 등장할까 기대했던 이들로서는 더더욱 안 의원이 너무 쉽게 그 꿈을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해보려고 했으나 사람도 잘 안 모이고 돈도 많이 드니 합당이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탈출구를 찾으려 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안 의원은 통합신당의 창당을 통해서도 새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르지만, 거대한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정당의 자기혁신이 그리 쉽게 가능할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사사건건 당내 분란의 목소리가 들리던 민주당은 이번의 결정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잠잠하다. 일단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끝이 나면 민주당은, 그간 우리가 보던 대로, 예전의 그 정당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미 민주당은 안철수 세력과의 합당으로 안정적인 양당 구도를 재확립하게 되었다.

과연 안 의원은 민주당을 환골탈태한 새 정당으로 변화하도록 이끌 수 있을까. 대등한 자격으로 합당이라고 하지만 통합 이전의 안철수당은 기본적으로 안철수라는 한 인물에 의존한 정당이라는 점에서 그가 새 정치를 주장하더라도 기득권 혁파에 대한 기존 민주당 내의 거센 저항을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야권 신당이 어떤 변화와 개혁을 추구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 성과가 분명하지 않다면 안 의원의 이번 통합 결정은 새 정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결국 민주당의 기득권 구조에 편승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새 정치를 갈망했던 대다수 유권자의 여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또다시 미래의 과제로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angwt@sn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