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국회의원을 1번, 장관은 3번,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는 2번씩 했다. 두 번째 총리를 할 때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경험해 보았다. 그가 행복해 보이는 건 화려한 공직 경험을 해서가 아니라 1938년생으로 70대 후반인 그가 품고 있는 꿈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헐벗은 민둥산으로 황폐화한 북녘 땅을 푸르게 조림하는 ‘그린 코리아의 완성’은 그의 필생의 숙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한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중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만든 주역 중 한 명이다. 40년 전 내무부 새마을담당관(부이사관급)으로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의 명을 받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입안한 사람이 바로 그다. 10년간 전국의 100만 ha 산지에 나무 21억3200만 그루를 심고 화전민 20만3000가구를 이주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치산녹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 통치권자인 박 전 대통령의 집념, 새마을운동의 에너지, 동원을 극대화한 치밀한 행정력이 시너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북녘의 벌거숭이산을 푸르게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은 그때의 경험에서 잉태했을 것이다. 그는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으로 있을 때인 2009년부터 북한 산림녹화를 위한 정책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때 사회통합위원장을 맡은 이유도 이 프로젝트를 민간 차원에서부터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치산녹화 계획을 세워 조림에 나섰던 시기에 북한은 식량 증산을 위해 산을 깎아 계단식 밭을 조성했다. 북한의 산림은 서울시 면적의 50배 정도가 황폐화해 있다. 북한 전체 면적 1200만 ha 중 지금은 47%만 숲으로 남아있다. 마침 북한은 올해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산림복원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북한의 이 계획에 우리의 치산녹화 경험을 접목시킬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그의 주도로 출범을 앞두고 있는 아시아녹화기구(Green Asia Organization)는 북한의 치산녹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민사회 정부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는 이 기구는 한국 비정부기구(NGO)와 국제 NGO가 협력해 남북 간 녹색경제 협력의 물꼬를 트게 만들 수도 있다. 조림과 식량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임농(林農) 복합경영의 녹색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첫 목표라고 한다.
북한의 산림 훼손과 홍수 피해 등의 자연재해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 있는 우리의 삶도 위협할 수 있다. 중국의 초미세먼지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듯 북녘의 백두대간이 황폐화하면 한반도의 산하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가 꿈꾸는 푸른 한반도는 결국 남북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그린 데탕트로도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북한 황폐 산림 복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한 산림 복구 지원단을 구성하고, 국제기구와도 협조해 북한에 시범조림과 병해충 방제 지원 시범사업을 제안할 계획이다. 정부는 한반도 통일 시대에 앞서 올해를 산림 복구를 통한 그린 데탕트 추진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원년이 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고 전 총리가 뿌릴 치산녹화의 씨앗이 북한의 황폐한 숲을 복원시키는 결실로 이어진다면 그가 해온 어떤 성취보다 값진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는 공인(公人)으로 살아온 50년을 회고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나머지 절반도 푸르게 만들어 그린 코리아를 완성하겠다는 그의 선택이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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