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용관]손학규 vs 서청원 빅매치 불발 그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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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정치부 차장
정용관 정치부 차장
“정치인은 선거로 말하지만, 지금이 몸을 던질 때인지 의문”이라며 양 갈래의 자락을 깔았던 손학규는 결국 칼을 빼지 않았다. 대선 패배의 책임자로 지금은 자숙할 때라는 게 공식 불출마의 변이었다.

내심 손학규와 서청원이 30일 열리는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한판 붙었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7개월에 대한 중간 평가가 어떤지, 여권의 친박 실세 공천에 대한 민심 흐름이 어떤지, 손학규는 분당(을) 승리의 저력을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을지 등 정치부 기자로서의 ‘무거운’ 궁금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청원의 표현대로 “과거 좋은 관계였는데 웃통 벗고 한판 붙는” 상황이 실제 벌어지면 어떨까 하는 ‘가벼운’ 호기심이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댄 것 같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손학규는 한때 YS 비서실장 출신으로 정무장관을 지낸 서청원과 한솥밥을 먹은 민주계 후배다. 손학규가 2002년 경기지사에 도전했을 때 서청원은 당 대표로 당선을 도왔고, 그런 서청원에게 손학규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캠프 좌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청원은 완곡하게 고사했지만 손학규 경선 캠프를 찾아 조직 운영 등 선거 노하우에 대한 강의를 했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만약 둘이 붙었다면 서로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라며 “본인은 물론이고 당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할 유례를 볼 수 없는 큰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판에선 사적 인연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많다. 손학규도 2008년 총선 때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동문수학한 후배인 박진 전 의원과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다만 서청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학규가 출마 결심을 내리지 못할 것으로 확신했던 것 같다. 대선을 노리는 사람이 지역구를 네 번째 바꿔가며 이겨봐야 본전인 불확실한 게임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고 본 듯하다.

손학규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앞으로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서청원이 7선으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말하듯 ‘신선(神仙)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다만 궁금한 건 독일로 가기 전의 손학규와 돌아온 이후의 그는 뭐가 달라졌느냐는 점이다.

손학규는 불출마 선언 후 8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연구소 창립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과연 내가 이 사회, 이 나라에서 진정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저 안에 끊임없이 그 질문을 하는 손학규와 방어하는 손학규가 싸우고 있었다”고 했다. “나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었다”고도 했다. 그동안 무슨 욕심을 부렸다는 건지, 또 무슨 욕심을 내려놓겠다는 것인지…. 진정성이 느껴지는 듯 하면서도 알쏭달쏭하다. 독일에서 8개월간 성찰과 모색의 시간을 보냈다지만 그는 여전히 ‘고민의 늪’에 빠져 있는 걸까.

이 국면에서 흥미로운 건 박지원의 행보다. 그는 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청원에 대해 “리더십도 있고 마음씨가 아주 좋은 분”이라며 한껏 치켜세우더니 같은 날 저녁 손학규의 싱크탱크 행사에 가서는 “독일처럼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며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안철수와 힘을 합쳐 뭔가 대선을 향한 모색을 해보려는 손학규, 그의 면전에서 내각제 개헌 운운한 박지원, 친박의 맹주로 자리하려는 서청원…. 4년 뒤를 향한 정치판 수 싸움은 벌써 시작된 것 같다.

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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