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혁명’에 가까운 세출 구조조정에 달려 있다. 첫 예산안 때 성패가 갈릴 것이다.”
박근혜 대선캠프 핵심 인사는 인수위 시절이던 올해 1월 기자에게 비장하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2011년 9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때 “향후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복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세출 구조조정과 세입 증가 간에 6 대 4 비중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재원 조달의 방법으로 세입을 늘리는 것보다 기존 세출을 구조조정해 아낀 액수가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복지 의무 지출을 제외한 재량 지출에서 일괄적으로 10% 정도 축소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서 추가로 10% 정도 줄이는 대안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 때 발표한 공약 가계부엔 5년 동안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으로 71조 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돼 있다. 세입 증가(53조 원) 규모와 비교해 6 대 4 기조를 맞췄다. 그러나 대선 때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선 박 대통령의 세출 구조조정 목표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다른 정부는 왜 못했겠느냐는 거다.
박근혜 정부의 첫 예산안이 26일 발표됐다. 1월에 비장하게 말했던 이 인사에게 소회를 묻자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목표액을 이루려면 기존 사업에서 500억 원씩 깎아서는 안 되고 사업 자체를 원점 재검토해 예산안 구성의 틀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큰 틀에서 이전 정부들과 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10%를 축소하겠다고 한 SOC 예산도 4% 축소에 그쳤다. 청와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부 지출을 크게 줄이기 어려웠다”고 하지만 애당초 세출 구조조정의 핵심은 불요불급한, 중복되는 예산의 수정이었다. 경기 활성화와 큰 연관성이 없는 예산부터 구조조정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타협위원회에서 증세 수준과 복지 수준을 정하겠다며 증세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필요하다면 증세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가 내는 세금이 적재적소에 쓰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각 부처에서 자기 영역을 지키느라 중복 편성하고 있는 예산부터 통폐합해야 한다. 올해 예산에서 고위공무원의 보수를 동결했다지만 공무원연금부터 재검토하는 등 정부의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예산안을 관행적으로 짜온 관료들에게만 맡겨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박 대통령의 ‘예산 혁명’은 그동안 중복으로 복지 지원의 혜택을 받은 이들에게, 아직 쓸 만한 길거리 보도블록을 다시 깔아달라고 요청하는 지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각오로 각 부처의 예산을 탈탈 털어 재배치해야 한다.
여야도 올해부터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민원성 쪽지를 배정하지 않겠다고 선포해야 한다. 증세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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