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나라 곳간 위험하다]<4>빚 갚으려 더 큰 빚 내는 ‘부채 공화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9일 03시 00분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는 무려 138조여 원(2012년)이다. 1년 이자가 4조4881억 원, 하루 이자만 123억 원에 이른다. 반면 작년에 영업활동 등으로 벌어들인 돈은 2조9000억 원. 영업이익으로는 이자도 못 갚는다. 한국전력공사 95조1000억 원, 예금보험공사 45조9000억 원, 코레일 12조5000억 원 등 덩치 큰 다른 공기업들도 빚더미에 올라 있다. 이들은 재정 압박을 견딜 수 없어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빚내서 빚을 갚으며 빚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부채 공화국’을 향해 가고 있다. 정부 공식 부채는 468조6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7.9%이다. 그러나 공기업 부채가 574조8000억 원이나 돼 둘을 합치면 나랏빚은 1000조 원을 훌쩍 넘는다. 박근혜정부도 경기 활성화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17조3000억 원을 편성해 부채 규모를 키웠다. 홍콩계 은행 HSBC는 최근 한국을 ‘고(高)위험 부채 국가’로 분류했다. 분명한 적신호다.

1000조 원이 넘는 부채가 또 있다. 가계 부채인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정부는 스스로 빚을 갚기 힘든 신용불량자를 345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국민행복기금처럼 개인의 자구(自救) 노력을 전제로 정부가 지원해주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은 지금까지 35만 명이다. 나머지 대다수 채무자는 빚을 갚을 여건이 안 되거나 채무 상환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가계가 파산하면 금융회사가 부실해지고 전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 부채로 전가되거나 소비 위축으로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다.

빚이 많은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는 유로존의 경제위기가 여실히 보여준다. 2010년 그리스의 국가부도로 촉발된 유럽의 경제난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이 부실한 나라들로 확대돼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동산 대출이 원인이다.

한국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데다 복지제도 확대로 돈 쓸 곳은 점점 늘고 있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8개 분기 연속 전 분기 대비 0%대에 잠재성장률마저 떨어져 세수(稅收)는 점차 줄어드는 구조다. 정부는 부채를 관리하는 ‘재정준칙’ 같은 제도를 마련해 더이상 후대에 짐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 정부도 공기업 돈으로 무리한 국책사업을 벌이는 일을 자제하고, 공기업도 강도 높은 자구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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