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행학습 금지법, 수월성 교육까지 막지는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일 03시 00분


초중고 입학시험과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대학 입학시험 등 세 단계 모두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다. 선행학습 금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교육공약의 핵심으로 학원의 선행학습이 공교육을 황폐화시킨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발의를 주도했지만 대통령과 교육부의 의지가 실려 있다.

법안 내용 가운데 초중고 입학전형에서 교육과정 내 출제 원칙을 엄격히 지키도록 한 것은 다분히 특수목적고를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 특목고를 그대로 두고 교육과정 내 출제를 강요한다면 특목고 존재 의미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특목고는 설립 목적에 맞는 수학능력을 요구하므로 선행학습 수요를 부른다. 특출한 외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외국어고는 물론이고 대학 수준의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글로벌 인재와 경쟁해야 하는 영재고 과학고도 중학교 범위 내에서만 출제하라면 우수 학생 선발이 어려울 것이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지필(紙筆)평가 수행평가 교내경시 등 모든 시험에서 해당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는 내용을 출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지금도 시행하는 제도다. 다만 어느 수준까지를 선행학습으로 볼 것이냐가 논란거리다. 교과서에서 응용문제를 출제할 경우 이를 선행문제로 볼 것인가, 심화문제로 볼 것인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논술 구술 면접 실기 등 모든 대학별 고사에서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넘어선 문제 출제를 금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출제문제에 대한 간섭은 대학 자율성에 대한 침해다. 교과목 간 통합형 문제를 출제하는 경향에 비추어 어디까지가 고교 교과과정 내 출제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 원칙을 어길 경우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학생정원까지 감축하겠다고 하는 것은 행정권 남용의 소지가 있다.

학생들이 학원에서 교육과정을 배우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현실은 안타깝다. 선행학습 규제에 찬성하는 초중고생 학부모가 71%에 이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선행학습은 어느 한 면으로만 재단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사교육을 부추기고 가계 부담을 늘리며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우수한 학생에게 지적(知的) 자극을 주고 수월성(秀越性) 교육에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교과과정을 앞서 공부한다고 해서 벌을 주는 제도는 지구상에서 한국 말고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이라도 학부모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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