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국가정보원 인트라넷(내부 통신망)에 게시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란 문건을 공개하며 국정원의 정치 개입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정보기관 수장의 발언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고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한 지시와 활동을 정치 개입으로 왜곡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과 국정원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이어 또다시 충돌하는 양상이다.
진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 관여로 의심할 만한 부분이 없지 않다. 가령 ‘국정 현안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단체들이 많은데…국정원이 앞장서 대통령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 ‘세종시와 4대강 등 주요 현안에 원이 중심을 잡고 대처할 것’ 등이다. 국정원이 대통령과 정부를 홍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국정원의 설명은 다르다. 원세훈 원장은 부서장 회의 등을 통해 줄곧 정치 중립을 지키고 선거에 연루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지시했다며 9개의 관련 발언을 공개했다. 4대강 사업과 제주민군복합항 등에 대한 대처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선동 지령을 하달하면 고정간첩과 종북세력이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인터넷 등을 통해 허위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기에 적극 대처토록 지시한 것”이라며 북한의 선동 내용을 날짜별로 공개했다. 정치 개입이 아니라 북한과 종북세력의 선전선동에 맞서기 위한 국정원장의 고유 업무라는 것이다. 북한이 이들 사업에 대한 반대를 공개적으로 선동했다는 점에서 할 일을 한 게 무슨 잘못이냐는 국정원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진 의원은 “국정원 내부의 제보자가 인트라넷에 올라 있는 내용을 보고 적어서 전달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일종의 내부 고발이라는 주장인데 국정원이 제시한 자료까지 함께 놓고 본다면 야당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췌해 제공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내용도 정치 개입에 해당하는지, 국정원장의 고유 업무인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
이와는 별개로 비밀 유지가 생명인 국정원의 내부 통신망에 오른 내용이 외부에 유출됐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만약 문건 유출이 정권교체기마다 고질병처럼 되풀이됐던 내부 직원의 정치권 줄 대기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정보기관이다. 정권 옹호나 유지의 도구가 돼서도 안 되지만 특정 정파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돼서도 안 된다. 국정원은 이 일을 계기로 외부의 오해를 살 일은 삼가야 한다. 동시에 엄정한 조사를 통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내부 문건을 유출하는 일이 없도록 직원 기강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