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경준]한국에 ‘건희市’가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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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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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경준 산업부 차장
잠셰드푸르. 인도 동북부의 도시다. 원래 이름은 삭치였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밀림이 우거진 오지였다. 1911년 제철소가 들어섰다. 도로 등 인프라와 공장 근로자들을 위한 주택과 편의시설, 사원, 위락시설도 생겼다. 오랫동안 문명을 거부했던 삭치는 한국의 포항 같은 세계적인 철강도시가 됐다.

1919년 삭치는 잠셰드푸르로 이름을 바꿨다. ‘잠셰드지의 도시’라는 뜻이다. 수십 년간 철강회사 설립에 매달렸지만 끝내 결실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난 잠셰드지 타타 타타그룹 창업주(1839∼1904)를 기리는 취지였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였을 뿐 아니라 늘 “지역사회와 국민은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강조하고 실천한 선각자였다.

145년 역사의 타타는 사실 10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전형적인 ‘문어발 재벌’이다. 상장된 계열사만 32개로, 시가총액은 우리 돈으로 108조 원에 이른다. 철강, 자동차, 항공, 발전, 정보통신에서 보험, 호텔, 음료까지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 80개가 넘는 나라에 진출해 45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잠셰드지부터 현재 6대까지 그룹 회장은 타타 가문 또는 인척들이 세습한 족벌(族閥)체제다.

그런데도 타타는 타타스틸의 잠셰드푸르가 말해주는 것처럼 사랑받는 기업이다. 비결은 사회공헌이다. 타타는 ‘사회로부터 온 것은 사회에 되돌려준다’는 사회공헌을 핵심가치로 삼았다. 사회공헌이 일반화된 지금과 비교해도 타타는 진정성에서 여느 기업들과 달랐다.

타타는 한때 세계 2위의 차(茶) 업체였지만 2000년대 초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계열사 타타 티를 19개 차 농장과 함께 팔아야 했다. 경영진은 농장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우려가 있고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이 단절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2005년 4월 데반힐스 플랜테이션이라는 회사를 신설한 뒤 그 주식을 대부분 지역주민인 근로자들에게 배분해 두 가지 걸림돌을 동시에 해소했다. 회사는 큰 손실을 입었지만 타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가난한 인도인을 위해 개발한 소형 승용차 ‘나노’(약 300만 원), 정수기 ‘스와치’(약 2만5000원), 100만 원 안팎의 조립식 주택 ‘나노 하우스’ 등도 모두 사회공헌의 산물이다.

한국에도 이런 기업이 있을까? 거액의 성금을 내고,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 프로그램만 가동하면 착한 기업일까?

동아일보는 이런 물음에서 서울여대 착한경영센터, 리서치앤리서치(R&R)와 함께 42개 업종, 195개 대표기업을 놓고 설문조사를 했다. 여기서 소비자들이 ‘한국의 착한 기업’으로 뽑은 곳들을 시리즈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 업종별 1위 기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해, 사회공헌이 곧 회사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믿음으로, 지속적으로 매진하는 점이다.

유한킴벌리는 사회공헌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사회문제도 해결하자는 개념으로 확장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에 초점을 맞췄다. LG전자는 경쟁력 있는 가격, 품질, 성능에 친환경 요소를 더해 ‘착하면서도 강한 기업’을 지향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신규 취항지를 중심으로 글로벌 사회공헌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국야쿠르트는 모세혈관 조직인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통해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역시 연구개발 인력이 주축이 돼 지역사회 어린이들에게 재능 기부를 하거나 ‘함께 움직이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꾸준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쳐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의 착한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진정으로 감동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인도의 잠셰드푸르처럼 한국에도 (이)건희 시, (정)몽구 시, (구)본무 시가 탄생할 수 있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잠셰드푸르#세습#타타#착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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