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김종훈을 내친 ‘애국주의’

  • 동아일보

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김종훈을 지명했을 때 사실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도 관료사회에 제대로 발을 붙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한번 고시에 붙으면 평생을 공직 울타리에서 안주하면서 촘촘한 선후배라는 그물망으로 외부 사람이 와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곳이 한국의 관료조직이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을 깡패조직인 마피아에 비유한 ‘모피아’라는 말이 나왔을까. 김종훈 카드는 신선했다. 하마평에 오른 삼성전자 퇴직 최고경영자들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다. 상상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 것은 미래창조과학부가 다른 어느 부처보다도 타 부처 장관들의 협조를 구해야 하고 경제부총리 이상의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라는 점에서였다. 미국에서 오래 산 그를 관료 출신 타 부처 장관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이 그에게 제대로 힘을 실어 주려면 차관과 핵심 국장까지도 패키지로 스카우트하는 게 더 나았을지 모른다.

그는 인사청문회도 하기 전에 사퇴했다. 김종훈이 한국 관료사회에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메리칸 드림’의 아이콘이었지만 조국의 검증은 혹독했다. 좋은 부모 만나 조기유학을 떠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 따라 미국 땅에 건너가 흑인 동네인 메릴랜드 주의 한 슬럼가에서 잡초처럼 살았다. 오로지 공부와 기술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람이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 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는 조직도, 인력도, 아무런 실체도 없었다. 중앙정보국(CIA)의 자문에 응한 경력을 마치 간첩인 양 몰아세웠고, 외환위기 당시 달러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굴렀을 때 그가 달러로 투자한 한국 부동산엔 ‘투기’라는 혐의가 씌워졌다. 장롱 속 금 모으기 운동은 애국이요, 그가 달러로 산 부동산은 ‘투기’라며 손가락질했다. 미국 시민권 포기 대가로 1000억 원의 세금 납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그에게 “가족들은 여전히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느냐”며 색안경을 쓰고 봤다. 인터넷에선 의혹이 사실로 난도질당했다. 인사청문회준비팀은 보름 동안 곁에서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의혹에 대한 해명보다는 창조경제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지에 대한 정책 준비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조국에 봉사하겠다며 꿈에 부풀어 비행기를 탄 그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정책에 접목시키지도 못하고 꿈을 접었다. 그런데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북한의 핵무장에는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이 그의 애국심을 문제 삼아 추방에 앞장섰다. 과연 누가 애국자인가. 참으로 역설적이다.

해외의 글로벌 인재들이 김종훈 낙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답답하다. 열네 살 때 떠난 조국에 봉사하겠다고 온 ‘까만 머리 미국인’을 매몰차게 걷어차 버린 나라가 한국이다. 그가 한국에 있던 보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어렵사리 스카우트해 놓고도 그를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던져 놓은 채 살아서 돌아오라고 방치한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정부조직법이 국회에서 표류한 보름 사이에 벌어졌다. 그가 한국을 떠나면서 한 말은 “아내와 딸들이 울고 있다”는 울분이었다. 다른 장관 후보자와 달리 그는 미국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부터, 또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똑똑한 천재 한 명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지식사회다. 민간기업에서는 해외에서 영입한 인재 관리를 이처럼 서툴게 하지는 않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에 발탁하고 미국인들이 환영한 것과는 너무 대비된다. 어설픈 ‘애국주의(愛國主義)’가 내친 김종훈이 못내 아쉽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박근혜 대통령#미래창조과학부#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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