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조성하]도박산업은 도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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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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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10여 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네바다주립대에서 ‘카지노 통제규제이론’을 공부할 당시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와 “Spare coins(스페어 코인스)?”라고 말을 건넸다. ‘남는 동전 있느냐’는 이 말은 ‘한 푼 보태 달라’는 구걸의 관용구다. 그래서 동전 두 닢을 주고는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다음 날 섬뜩한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의 ‘함정수사’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선 한적한 버스정류장에서 성매매가 이뤄졌다는데 ‘스페어 코인스’가 암호였다. 그래서 경찰도 여성 경관을 위장시켜 단속을 벌였다. 즉 성매수자가 위장 경관을 따라 모텔 객실에 들어가면 현장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다. 이건 함정수사다. 그리고 불법이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에선 그렇지 않았다. 이유가 기막혔다. 공창(公娼)이 있어서다. 매매춘은 ‘공공불법방해(Public Nuisance)’다. 그런데 미 연방 50개 주 중 네바다만은 예외다. 주 대법원이 1977년 유서 깊은 매음굴 ‘치킨랜치’(현재도 성업 중)가 제기한 소송에서 매춘 허가를 카운티(지자체) 재량에 맡긴 이후다. 그런데 판결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판사는 ‘권리’와 더불어 ‘의무’도 부과했다. 성매매 수입에 대한 세금 납부다.

네바다의 이런 발상, 그건 ‘미 연방 최초 도박 허용’(1931년)이란 전환적 정책의 연장선상이다. 도박과 매매춘은 똑같이 ‘사회적 해악’이다. 그런데 네바다 주 판사만 몰라 이렇게 판결했을까. 아니다. 그건 ‘면허(License)’라는 통제·규제수단을 통해 해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그 배경은 ‘특권화 사업(Privileged business)’인데 무기가 그 예다. 무기란 범죄에 악용될 위험한 도구지만 생명을 보호해줄 자구수단-필요악(必要惡)-이다. 그러니 아무나 만들고 팔게 할 수는 없을 터. 그게 면허다. 역기능(해악)의 최소화를 위한 적극적 노력이다.

카지노 등 도박도 같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사막 땅 네바다 주는 재정이 고갈됐다. 더이상 공공정책을 수행할 수 없게 됐고 주정부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런 네바다를 구한 게 도박 합법화다. 뉴딜(공공투융자)정책으로 풀린 돈-라스베이거스 인근의 후버댐 건설 공사자금-이 흘러들도록 한 물길이었다. 이를 통해 도박산업이 부족한 재정 확충에 효자 노릇을 할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도박 합법화가 제1차 오일쇼크(1973년) 이후 재정 확충에 어려움을 겪던 연방 48개 주로 차차 확산된 배경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네바다 주가 개발한 도박산업에 대한 통제·규제원칙과 수단이다. 도박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밀한 관리기법이자 도박을 재정 확충의 효과적 수단으로 환골탈태시킨 도구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교육과 복지 같은 공리민복(公利民福), 주민의 행복한 삶이다.

요즘 불법도박장 개설에 중형이 부당하다며 집행유예를 내린 판결로 소란스럽다. 그 판결의 요지는 ‘도박장을 연 행위가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이미 거악(巨惡)을 범하고 있는 국가의 손으로 피고인을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판결 자체보다는 이런 결론에 이른 과정에 더 관심을 둔다. 도박의 역기능만 보고 허가받은 도박산업-복권 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 스포츠토토 등-마저 ‘악행’시하는 태도다.

이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반세기 동안 도박산업을 운영해오며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기여한 바조차도 이해시키지 못해서다. 강원랜드가 없었다면 폐광지역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1960년대 제1차 경제개발계획 당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허가하지 않았다면 부족한 외화는 어떻게 수급했을까. 이젠 국민복지를 위해 도박산업 선진화를 생각할 때다. 편견은 곧 그르침이다. 그런 만큼 도박산업에 대한 사시(斜視)적 시각은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이 마른 수건 짜듯 국민이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을 더 내야 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시기라 더더욱 그렇다. 도박산업에 내제된 재정 확충 능력은 이미 입증됐다. 싱가포르 같은 선진국에선 이미 그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걸 계속 무시한다면…. 그건 직무유기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절대 도박이 아니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카지노#도박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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