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도지사 물세례

  • Array
  • 입력 2013년 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인정할 수 없어!” 그제 전남 도의회에서 새해 업무보고를 시작한 박준영 지사에게 고함과 함께 물세례가 쏟아졌다. 통합진보당의 안주용 도의원이 박 지사 얼굴에 종이컵에 든 물을 끼얹었다. 물줄기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이었기에 망정이지 황산 같은 독극물이었다면 중화상을 입을 수 있었다. 꼼짝 않고 안 의원을 쳐다보던 박 지사는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보고를 마쳤다. 안 의원은 물세례 이후 “사과와 반성 없이 연설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며 애국열사라도 되는 양 기자회견을 했다.

▷박 지사가 이달 8일 방송 인터뷰에서 “(대선에서 몰표를 준) 호남인들이 ‘멘붕’인데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감정에 휩쓸리거나 충동적인 생각 때문에 투표하는 행태를 보이면 (호남 지역 이외의) 전국과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고 말한 것에 안 의원은 격분한 듯하다. 박 지사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누리꾼 ‘광주토박이’의 지적대로 ‘도민들의 민심을 먼저 헤아려야 하는 도지사이기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폭력까지 용납할 순 없다. 같은 홈페이지에서 ‘호남인’은 “전라도 100% 생각이 같아야 한다면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한다”고 개탄했다. ‘비(非)전라인’은 “박근혜는 괴한의 칼에 습격당하고 박준영은 종북에게 테러를 당하다”라고 적었다.

▷2011년 11월 22일 당시 민주노동당, 현재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인 김선동은 국회에서 헌정 사상 초유의 ‘최루탄 테러’를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한다며 최루탄을 터뜨린 뒤 “이토 히로부미를 쏘는 안중근의 심정이었다”고 주장했다가 ‘안중근 의사 숭모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김 의원이 미리 보좌관들에게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만큼 최루탄 투척은 민주주의를 유린한 명백한 범죄다. 그러나 국회에선 아무도 고발하지 않았다. 결국 시민단체 고발로 수사에 나선 검찰은 여덟 번 소환에 불응한 김 의원을 체포하지도 않고 불구속기소로 끝냈다. 이렇게 유야무야되고 나서 같은 당에 의해 다시 물세례 사태가 벌어졌다.

▷전남 도의회는 안 의원을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진당 광주시당은 물세례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은 채 박 지사를 겨냥해 “호남인들의 가슴팍에 더 큰 비수를 꽂은 데 사죄하고 걸맞은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를 능멸했던 김 의원은 통진당 원내 수석부대표로 영전한 상태다. ‘형님’에게 배운 대로 행한 안 의원도 징계가 흐지부지되고, 중앙무대에서 클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전남 도의회가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와 법치가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안 의원에게 가르쳐 주기 바란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전남 도의회#박준영 지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