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병선]학벌사회와 대학 입시배치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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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선 교육평론가
한병선 교육평론가
본격적인 입시철이다. 학교는 학교대로,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모두 바쁘다. 학원도 마찬가지다. 재수생들을 흡수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학원버스에는 ‘서·연·고, 서·성·한’ 반(班) 학생 모집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달고 다닌다. 입시설명회나 학부모 총회에서도 대부분 이런 순으로 학교를 소개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연·고, 서·성·한’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를 일컫는 말이다. 결국 이는 상위권 대학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이런 학벌 마케팅은 “그래도 서·성·한까지는 가야지”란 입시 덕담으로 이어진다. 이뿐이랴, 교육특구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상기한 학교들이 아니면 대부분 재수를 시킨다. 학생들도 이들 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는 자랑스럽게 학교를 밝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얼버무리고 만다.

여기에 한몫을 한 것이 바로 대학입시 배치표다. 대학입시에서 배치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과거 지방거점 대학이 붕괴되기 시작한 학력고사 이후 배치표에 따라 학과별, 학교별 줄 세우기를 통해 생긴 부작용이다. 이후 배치표는 무소불위의 입시권력으로까지 성장했다. 학생들은 성적이 나오면 입시배치표에 따라 그대로 학교를 선택했다. 1, 2점 차에 따라 대학과 학과가 순서대로 결정되었다.

배치표 권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입시에서 배치표가 없으면 금단현상을 일으킨다. 학생들과 교사들을 마약처럼 빠져들게 만든다. 입시철만 되면 학원가에서 배치표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 배치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학은 배치표 작성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로비를 시도하기도 한다. 특정 학교나 학과의 장래가 배치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갑과 을이 뒤바뀌어 있는 이런 현실,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입시배치표는 특히 학벌서열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서·연·고, 서·성·한’에서 더 나아가 ‘중·경·외·시(중앙대·경희대·한국외국어대·시립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학벌체계는 우리 사회의 학벌선호 심리를 배치표가 잘 투영해 준 결과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학벌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따진다. 말로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결혼 상대를 고르는 데도, 취직을 하는 데도, 심지어 이성 친구를 만나는 데도 학벌을 먼저 따진다. 예컨대 대학생들이 소개팅을 하는 경우 ‘서·연·고·서·성·한’까지가 친구를 소개할 수 있는 범위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을 잘 나타내주는 한마디가 있다. ‘국적은 변해도 학적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더는 말이 필요 없는 표현이다. 학벌은 우리 사회 특유의 사회·문화적 봉건성과도 맞닿아 있다. 끼리끼리 폐쇄적 집단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아성을 형성한다. 특정 학교들을 빗대어 마피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문벌, 혹은 군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학벌주의의 사회적 폐해는 심각하다. 학벌주의에 따라 집단을 연고라는 사적(私的) 네트워크로 묶어놓는다. 사적 네트워크로 결속된 집단과 사회는 다양성을 수용하기 어렵다.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과 사회는 새로운 시각과 변화에 대한 강한 배타성을 보인다. 이런 태도가 우리 사회의 발전적 진화를 어렵게 하는 것은 자명하다.

‘서·연·고, 서·성·한’ 식의 학벌체계는 학벌사회와 권력화된 입시배치표가 만들어 낸 절묘한 합작품이다. 결국 이 기이한 ‘계급’은 우리 사회의 학벌문화가 깨지지 않는 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
#입시#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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