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영호]檢‘개혁 태풍’ 거셀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1일 03시 00분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수억 원의 뇌물을 받은 검사가 구속되더니, 초임 검사와 피의자의 성추문까지 사실로 드러났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에 벤츠 여검사까지 해마다 반복된 비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보니 충격이 더욱 크다. 거기에 지휘부 내분까지 겹쳐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더 갈 데 없이 추락한 검찰에 거센 개혁의 태풍이 밀어닥칠 형국이다.

비대해진 권한부터 줄여야

검찰에 대한 그동안의 반감과 불신이 더해져 비난이 들끓고 있다. 내부감찰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간부가 차명계좌로 기업에서 뭉칫돈을 받는 것을 경찰이 적발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나. 얼마나 기강이 해이해졌으면 시정잡배나 저지르는 일이 검찰에서 생기는가. 이런 비난의 근원에는 검찰이 너무 많은 권한을 쥐고 있으면서도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검찰이 처음부터 많은 권한을 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엘리트 의식과 영향력 확대 욕심에 사로잡힌 검사들이 경찰을 제치고 직접수사에 나서는 일이 이런저런 계기로 늘어난 결과다. 그중에는 검찰을 이용하려고 정치권력이 부추기거나 경찰이 못 미덥다고 해 떠안은 일도 있다. 특수, 강력 같은 부서가 의욕적으로 벌인 직접수사가 검찰권의 비대라는 화근을 낳았다.

비대한 권한을 줄이겠다는 것이 개혁의 방향이다. 경찰보다는 덜 정치적이고 덜 부패했다고 믿고 몰아줬는데, 그 신뢰가 무너졌으니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의 독자 수사를 전폭 인정하고 검찰에는 공소권만 남겨놓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검찰이 밉다고 수사지휘의 틀을 허물겠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중수사 시비 같은 수사지휘를 둘러싼 갈등의 조정은 시급하지만 수사지휘의 틀을 허무는 것은 형사사법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무릇 범죄수사 과정에서 일차적인 책임을 진 경찰과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협업할 수 있는 것은 수사지휘라는 고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수사지휘라는 안전장치 때문에 경찰 수사가 옆길로 빠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수사지휘의 겉모습만 보면 검사가 위에서 일방적인 지시를 하는 것 같지만 대규모 인력이 현장에 나가 증거 확보나 범인 검거를 주도하는 경찰에 검사도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기능상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협업 없이 따로 놀면 증거 확보에 실기해 당연히 기소될 사람이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없다. 지휘 과정의 비인격적 언사나 고압적인 자세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수사지휘 자체를 없앨 일은 아니다.

수사지휘권 없애면 피해는 국민에

수사지휘권을 검사가 특권처럼 휘두른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수사현장의 실상을 까보면 전혀 딴판이다. 수많은 경찰의 사건기록이 검사의 책상에 넘어오면 영장 청구나 기소에 필요한 보완지휘를 시간에 쫓기며 내려야 하는 부담은 피를 말릴 정도다. 오죽하면 경찰이 저지른 일을 뒤에서 수습해주는 지게꾼이라는 한탄이 검사 입에서 나오겠는가.

수사권에 대한 서투른 칼질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수사지휘권이 흔들리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경찰의 자질이 크게 향상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업무절차도 투명해진 만큼 경찰의 자율적인 수사영역을 넓혀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검사가 경찰 수사에 개입할 가능성을 아예 막아버려서는 안 된다.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 옹호의 책무를 검사에게 맡긴 형사소송법의 틀을 허무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반한다. 직접수사를 줄이고 그 상징인 대검 중앙수사부를 폐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사지휘의 틀만은 지켜야 한다.

검사의 청렴성에 오래전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부패의 유혹에 노출된 채 권한이 비대해졌으니 바람 잘 날이 있겠는가. 전국의 직접수사 현장에서 칼날을 피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허점을 보이는 검사를 그냥 둘 리 없다. 틈만 나면 금품공세로 나올 것이다. 그저 그런 사람이 인사권을 쥐다 보니 승진의 길목에서 청렴성을 따져 거르는 데 소홀했다. 엄정한 감찰을 떠들면서도 동료의 비리를 캐는 부담을 떠안은 감찰부서에 힘을 실어주지도 않았다. 정치검찰 시비에 시달리며 문제가 드러나도 적당히 봉합해 온 것이 ‘제 식구 감싸기’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래서야 검사의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별도 기구의 도입을 막을 수 있겠는가. 비대해진 직접수사를 줄이지 않으면 해답이 없다.

제도의 개혁 이전에 의식의 변화가 앞서야 한다. 기강 문란 역시 사람의 문제다. 청신한 기풍이 조직 내에 퍼져 저절로 기강이 서게 만드는 사람이 검찰총장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래서 검사들이 몸을 낮추고 특권의식을 벗어 던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작은 사건에서부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도록 묵묵히 일하는 검사는 기를 살려줘야 한다. 겨울 산에 올라 잎을 모두 떨군 채 세찬 북풍을 이겨내는 나무를 보라. 개혁의 태풍이 거셀수록 몸집을 줄이고 기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검찰#검사#뇌물#성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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