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현철]일본 가전업계는 왜 몰락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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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후 일본은 ‘전자입국’을 기치로 파나소닉 소니 샤프 같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육성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최근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파나소닉은 올해(2012년 4월∼2013년 3월)에만 7650억 엔(약 10조4000억 원)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의 대규모 손실까지 더하면 지난 20년간 열심히 벌어온 순이익을 한꺼번에 까먹는 셈이다.

日 기업내 의사결정 방식에 문제

소니는 주력인 TV 부문이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회장과 사장이 동시에 퇴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샤프주식회사이다. 한동안 액정표시장치(LCD) TV로 일본시장을 석권하던 샤프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도산 위기에 몰렸고 급기야 대만 기업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전자왕국 일본의 거대 기업들이 몰락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엔화 강세나 일본 정부의 과도한 노동규제 등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업 내 의사결정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각 사업부가 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업부의 부장이나 과장 같은 중간관리층이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경영진이나 현장은 그들의 의사결정을 추인하거나 따르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소위 의사결정이 미들(middle) 관리자층에서 이루어지고 이 의사결정 결과가 톱(top)이나 바텀(bottom)으로 전달되는 ‘미들 업 다운 방식’으로 운영되어 온 것이다.

아날로그시대에는 이 방식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중간관리층은 자율성을 가지고 각 사업부를 전방위적으로 이끌어 갔으며 각 현장은 강한 자부심으로 수많은 개선 아이디어를 내면서 품질을 개선해 나갔다. 가이젠(개선)이나 위임경영 같은 ‘일본식 경영’이 범세계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방식은 디지털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무용지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제품이 표준화 모듈화됨에 따라 현장 개선활동의 중요성은 약화되었고 그 대신 경영진의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의사결정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해 보지 못했던 경영진은 과감한 투자 의사결정을 못 내리거나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지금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 기업들은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위기를 잘 헤쳐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작년에 TV패널 부문(LCD사업부)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결산 2개월 뒤에 분사화를 결정하였고 올 7월에는 다른 자회사와 합병해 삼성디스플레이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러한 의사결정으로 이 회사는 올 3분기에 벌써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과감한 투자결정 돋보여

이러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오너와 미래전략실 같은 스태프 부문이 한국 기업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일본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 기업을 열심히 벤치마킹하기 시작하였고 오너 경영과 미래전략실 같은 스태프 부문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도요타자동차가 오너 경영으로 복귀한 것이나 히타치 도시바 같은 기업들이 본사 전략 기능을 강화한 것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열심히 배우려는 한국 기업들이 국내에서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오너 경영이 경제민주화라는 미명하에 해체 위기에 놓여 있으며 미래전략실 같은 스태프 부문이 이전 정권 때부터 계속 폐지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최대 경쟁자들이 없어서 안달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못 없애서 안달하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는 없을 것이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본 가전업계#일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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