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연평도 해병이 ‘후보들에 던진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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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연평도에는 벌써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14일 오전 군 헬기 편으로 찾은 연평도는 강풍과 높은 파도로 사흘째 여객선 운항이 끊긴 ‘외로운 섬’이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무자비한 포격으로 생긴 상처는 아물었을까. 2년은 긴 세월이 아니었다. 섬 곳곳에 아직도 피격의 흔적이 생생했다.

곳곳에 남아 있는 北 포격 흔적

해병부대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붉은 깃발이 보였다.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포탄이 떨어진 곳에 꽂아둔 것이다. 해병부대가 사용하는 한 건물의 옥상 귀퉁이는 포탄에 찢겨 너덜너덜한 상태로 매달려 있었다. 부대 주변 야산은 포격 당시 화재로 나무들이 모두 타버려 벌거숭이로 손님들을 맞았다. 해병들은 ‘잊지 말자 연평 포격전, 응징하자 적 도발’이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걸어 놓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북한의 방사포가 어떻게 산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군부대 건물에까지 날아들었을까. 관측초소(OP)에 올라 북한 쪽을 보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바로 눈앞이 북한 땅이다. 북한군의 포탄이 날아온 무도가 11km 전방에 있다.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방사포를 160여 발이나 쏘아댔으니 아무리 해병대가 은폐 엄폐를 해도 피해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연평도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점점이 보이는 북한 섬 가운데 장재도가 유독 눈에 띈다. 바로 옆 석도는 나무가 무성해 초록색이지만 장재도는 누런 바위섬이다. 8월 17일 김정은이 방문한 뒤 각종 군사시설 공사를 하느라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려 해골섬이 됐다. 해병부대 지휘관은 “최고 지도자의 격려를 받은 북한 병사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라며 김정은의 무도 장재도 방문으로 군사적 위협이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북한 어선의 잦은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침범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 어선은 올 들어 9차례나 NLL을 침범했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도 심각하다. 요즘 NLL 북쪽 해상에서 꽃게를 잡는 중국 어선은 200척 수준으로 북한 어선 수와 비슷하다. 북한 인공기를 달고 다니는 중국 어선도 있다. 어선으로 위장한 북한군의 도발도 경계해야 한다.

NLL은 연평도에서 1.5km 떨어져 있다. 그곳을 놓고 대선후보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우리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온 NLL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NLL을 수호하겠다”면서도 공동어로수역과 서해평화협력지대 방안을 거론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18일 이명박 대통령의 연평도 방문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시비를 걸었다. 현직 대통령의 안보 행보를 비난하더니 뒤늦게 NLL 사수를 주장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NLL 절대사수 의지 충만한 장병들

북한에 연평도를 비롯한 서북 5개 도서는 ‘옆구리를 겨누는 비수’와 같다. 현장에서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해병 지휘관은 “안보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했다. 연평도야말로 대선후보들이 챙겨야 할 안보 현장이다. 북한이 도발 야욕을 접지 않았는데도 우리 스스로 군사적 가치를 포기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NLL 지위 변경 거론은 북한과의 기 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작은 쪽배를 타고 무도와 장재도를 찾았던 김정은이 남한 대선후보들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외칠 것 같다.

NLL에 대한 논란으로 혼란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해병대 장교와 병사들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해병대는 NLL 절대 사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대선후보들이 직접 들어야 할 답변이라는 생각을 하며 연평도를 떠났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대선#연평도#북한#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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