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양구]러시아와 더 가까워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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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이양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요즘 러시아에서 만나는 정치인 학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은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드라마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에 대한 높은 관심은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 대한 이들의 높은 관심은 ‘경제협력’이란 실질적 목표와 닿아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감이 있다. 그 거점이 되는 지역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축으로 한 극동 지역이다.

100여 년 전 제정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건설해서 동방 진출을 시작했다.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아태지역 진출을 위한 신(新)동방정책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만하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중요성을 재인식해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 것이다.

한반도 28배 극동지역 자원 풍부

극동지역은 한반도의 28배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에 풍부한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발전 잠재력이 무한하다. 이곳은 또한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4700km에 이르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가스관이 건설되고 있고 석유, 가스개발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주항공과 유전공학, 해양 등 과학기술 분야도 협력할 것이 많다.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당장 서비스·물류 분야가 100% 개방된다. 기후온난화로 자원 개발과 북극 항로의 이용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우리의 극동 러시아 진출 역사는 올해로 20년째다. 그동안 한국과 러시아 극동지역 간에는 많은 협력과 성과가 있었다. 나는 올 6월 마가단과 추콧카 출장을 계기로 극동 8개 주를 모두 방문하게 됐다. 9시간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면서 극동 러시아야말로 우리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국가 발전과 직결되는 곳임을 실감했다.

서울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고속철도로 연결하면 불과 3시간 거리다. 한국과 러시아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날도 올 것이다. 한국과 극동 러시아는 일일생활권이자 단일경제권이 된다는 얘기다. 최근 만난 러시아의 한 인사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얘기했다. 앞으로 한반도종단철도(TKR)와 TSR를 고속철도로 연결하고 가스관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비전도, 통일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엄청난 역사적 변혁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우선 한-러 간 상호 이해와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중국 일본에 대해서는 국민감정이 좋지 않지만 한국인에게는 우호적이었다.

최근 방문한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우리 영농 기업은 10여 년간 모진 고난을 겪으며 러시아 법을 지키고 현지인을 고용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해 왔다. 기업 측 인사들은 “투명하게 기업 운영을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던 현지 사람들이 이제 ‘당신들이 옳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한국 기업이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세계 유일의 한국학 대학이 있어 좋은 인적자원을 양산하고 있으며 현대호텔도 있고, 한국이 운영하는 문화센터와 국제학교도 있다. 무엇보다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10만여 명의 고려인이 큰 자산이다.

5∼10년 내다보는 마스터플랜 필요

극동의 중요성에 상응한 그랜드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한-러 간 공동의 비전과 전략을 토대로 최소한 5∼10년간의 협력 내용과 액션플랜, 로드맵이 담겨야 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극동 러시아와 중국 동북 3성을 대상으로 200여 개의 프로젝트가 망라된 10개년 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한-러 양국은 더 나은 협력 모델을 추진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마스터플랜을 토대로 행동할 때다.

러시아는 우리 편이 될 수 있다. 러시아를 더 가까이 하자.

이양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러시아#외교#마스터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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