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원순 시장 ‘과거 지우기’가 만능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5일 03시 00분


서울시가 오세훈 전 시장 때 만들었던 반포대교 남단 인공섬 ‘세빛둥둥섬’ 사업자인 ㈜플로섬과의 계약 무효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서울시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아 계약 무효’라는 것이 서울시 주장이다. 총공사비 1390억 원이 투입된 세빛둥둥섬은 작년 5월 완공돼 시민에게 공개됐다. 그러나 사업 진행이 순탄치 않아 서울시의 최초 민자(民資) 파트너였던 씨앤우방이 자금난으로 사업을 중도 포기했다. 대타를 찾아 나선 서울시가 효성그룹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 플로섬에 계약조건을 양보하면서 사업을 맡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빛둥둥섬을 ‘오 시장 전시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했다. 그러나 시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해도 서울시 내부의 문제일 뿐 민간업자와 맺은 계약을 무효화할 사유는 못 된다. 꼭 계약 취소가 필요하다면 그에 따른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고 민간업자를 겁박하면 안 된다. 박 시장의 서울시가 계약 상대를 겁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시는 서울지하철 9호선 운영사업자인 메트로9㈜와 맺은 운임 자율결정 계약에 대해 무효를 주장하며 메트로9의 면허 취소를 거론하고 있다.

박 시장은 선거 때 “전임 시장이 한 사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과거 지우기’에 열심이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서울시 브랜드로 쓰던 ‘하이 서울’을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10월경 열릴 ‘하이 서울 페스티벌’부터 행사 이름을 바꿀 계획이다. 조순 시장 시절에 만든 상징물 ‘해 산 강’, 2009년부터 사용된 ‘해치’도 재검토 대상이다.

서해에서 인천 김포를 잇는 경인아라뱃길이 올 5월 완공되자 박 시장은 한강뱃길과 아라뱃길을 끊겠다고 나섰다. 최근 전국의 하천에서 녹조 현상이 나타나자 박 시장은 “한강 내 잠실보 신곡보의 철거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강의 수중보는 국토해양부가 소유 관리하는 국유 하천시설로 서울시장의 권한 밖에 있다. 녹조의 원인은 폭염 등 여러 가지로 보(洑) 탓만 할 수는 없다.

전임자의 행정 행위 중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현 시장이 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임 시장의 치적을 가리거나 현 시장을 빛내기 위한 ‘과거 지우기’라면 문제가 있다. 시장이 바뀐다고 기존 계약을 숙고 없이 무효화한다면 서울시의 신뢰성이 훼손된다. 박 시장도 ‘전임 시장’이 될 날을 생각하며 시정을 펴기 바란다.
#박원순 시장#세빛둥둥섬#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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