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석호]김정은, ‘수령 경제’를 어찌할꼬?

  • 동아일보

신석호 국제부 차장·북한학 박사
신석호 국제부 차장·북한학 박사
2007년 11월 방문한 쿠바는 천혜의 관광지였다. 감색 카리브 해와 늦가을에도 더운 열대 기후, 스페인 제국주의가 남긴 유럽풍의 아바나 도심과 말레콘 방파제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정열적인 연인들. 1990년대 초 소련의 체제 전환으로 경제위기를 맞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이 가장 먼저 외국인 관광 개방을 확대해 부족한 달러를 수혈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해됐다.

아바나 도심 거리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고급 외제 관광버스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가이드는 ‘가비오타(GAVIOTA)’라는 파란색 상호가 붙은 관광버스를 가리키며 “군부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외국인 상대 관광회사”라고 소개했다. 유명 관광지의 호텔과 휴양시설, 관광용품 제조업체와 여행사 등을 거느린 ‘쿠바식 재벌’인 셈이었다.

카스트로는 스스로 ‘특별한 시기’라고 명명한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군의 경제활동을 장려했다.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현 국가평의회 의장도 국방장관이던 1993년 “콩이 대포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위기 전부터 우수한 인력과 합리적 경영시스템을 개발해 온 쿠바 군부는 최고지도자의 독려를 받으며 ‘기술관료형’에서 ‘기업가형’으로 변신했다. 지금도 쿠바 국영기업 간부의 다수는 군 출신이다.

군이 돈벌이를 한다는 점은 북한도 다르지 않다. 2010년 갑자기 나타나 몇 년 안에 10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공수표를 날렸던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은 2006년 군부가 홍콩에 설립한 외화벌이 회사였다. 남한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했던 금강산 관광지구 내 옥류관 식당이나 서커스단 등은 군부 외화벌이 회사인 백호무역 소속이었다.

하지만 쿠바와 북한 군부의 돈벌이는 배경부터 좀 다르다. 좀 거칠게 말해 쿠바 군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돈을 번다면, 북한 군부는 ‘김일성 왕조 일가(一家)’와 군부 자신을 위해 달러를 모은다. 북한의 ‘군(軍) 경제’는 ‘당 경제’와 함께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한 1970년대 초반부터 개발하고 운영해 온 북한 ‘수령 경제’의 중핵을 이룬다.

최고지도자는 최측근 군인과 그의 군대에 무기 개발과 수출권, 광산 개발권, 송이버섯 채취권, 서해 꽃게 어획권 등 돈이 되는 사업권을 하사한다. 군인과 군대는 사업으로 번 달러의 상당량을 ‘충성의 통치자금’으로 상납한다. 이런 ‘호혜와 상납’의 관계를 통해 최고지도자는 군부의 충성을 유지하고 군부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챙긴다. 시대착오적인 군정(軍政) 유착 시스템은 북한 유일독재체제의 경제적 기반이면서, 내각이 운영하는 국가경제를 빈껍데기로 만들고 경제위기를 심화시킨 주요 원인이다.

아내를 전격 공개하고 “세계가 조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세계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쿨(cool)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은 부친인 김정일이 물려준 수령 경제를 어떻게 할 생각일까. 김정은이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전격 해임한 이유가 ‘군부 호주머니 털기’라는 가설을 세운 뒤 계속 머리를 맴도는 질문이다.

그가 낡은 수령 경제를 해체하고 내각이 운영하는 국가경제를 정상화한다면 그야말로 ‘쿨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수령 경제에 올라타 손쉽게 통치자금을 조달하고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한 아버지의 길을 답습한다면 최근 관심을 모으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 움직임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신석호 국제부 차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김정은#수령 경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