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바보야, 문제는 성장이야!

  • 동아일보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어제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가 정치화하고 있어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좋은 경제정책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주지만 최근 정부와 정치권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는 바닥권에 머문 채 장기간 회복되지 않는 ‘L자형’ 늪에 빠져들고 있다. 어제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은 전 분기 대비 0.4%에 그쳤다.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상반기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2.6%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나아지는 상저하고(上低下高) 모습을 보이며 한 해 전체로는 3.0% 성장할 것으로 봤다. 그렇게 되려면 하반기에 성장세가 3% 후반대로 회복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성장을 견인할 만한 대내외 변수가 보이지 않아 성장률이 2%대에 그칠 우려가 크다.

가장 큰 위협은 유로존 재정위기다. 스페인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지방정부들이 속속 파산위기를 겪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올해 ―4.7%인 경제성장률 전망을 최근 ―7%까지 낮췄다. 외신들은 그리스가 자력 회생을 못하고 조만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로존 최후의 보루인 독일마저 국가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으며 17개 독일 은행의 신용 전망도 내려갔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 또한 침체가 이어지면서 현재 AAA인 신용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위기는 이미 몇몇 국가에 대한 지원으로 풀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위기의 전염 때문에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꺾이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위협이다.

이럴 때일수록 성장률 유지에 매진해야 한다. 성장은 곧 고용을 뜻한다. 순수 경제지표인 성장률과 달리 실업률은 정치사회적 파급력이 크다. 성장 없이는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으면 민생이 힘겨워진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봐도 성장은 긴요하다. 성장하지 않으면 나라가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고 마는 것이 글로벌 경쟁의 구조다.

지금 한국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反)성장의 집단 주술에 걸린 듯하다. 정 총장이 지적했듯 대선에 정신이 팔린 정치권은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은커녕 경제 때리기와 성장 배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정건전성을 생각하지 않는 무상복지, 반기업 정서로 흐른다. 여야의 어느 대선주자도 성장에 온전히 무게를 둔 비전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경기침체로 고용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성장 담론에 무관심하다면 ‘일자리 내쫓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대선 구호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 당선됐다. 미국에서 이 구호는 선거 때마다 부활한다. 우리 대선후보들도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라고. 그리고 성장과 고용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국민의 일자리와 민생을 해치는 말을 하고 나쁜 정책을 내놓는 후보를 밀어내고 일자리와 민생을 지키는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한국 경제#유로존#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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