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五福)은 수(壽·오래 사는 것) 부(富·부유하게 사는 것) 강녕(康寧·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 유호덕(攸好德·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것) 고종명(考終命·질병 없이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오복을 모두 누릴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다. 한 잡지사가 조사한 현대인이 바라는 오복은 건강, 배우자, 재력, 직업, 친구였다.
2012 런던 올림픽이 이달 27일 개막해 17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태극전사들 중 체급 종목 선수들에게 “오복 중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뭐라 답할까. ‘원 없이 먹어도 살 안 찌는 체질’이 아닐까.
그만큼 체중감량에 따른 고통은 엄청나다. 그들은 상대방과 싸우기 전에 평소 자신의 체중에서 5∼10kg을 빼는 눈물겨운 투쟁을 해야 한다. 간혹 체급을 올리고도 잘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체구와 힘이 월등한 상위 체급에서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유망주라고 불렸던 선수들이 그렇게 스러져갔다. 반면 오광수(라이트플라이급)와 김광선(플라이급) 문성길(밴텀급)이 아마복싱에서 롱런하며 승승장구했던 것은 체중조절을 효과적으로 잘했기 때문이다. ‘체중감량도 실력’이라는 결론이다.
체급 종목 선수들의 체중감량 모습은 처절하다. 이뇨제 복용과 ‘죽기 살기 사우나’ 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있었다. 1996년 유도 국가대표 정세훈(65kg급)은 조깅 후 곧바로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빼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 중 숨졌다. 사망원인은 심폐기능 중단이었다. 평소 체중이 78kg 정도였던 그는 닷새간 굶다시피 하며 10kg 이상을 단기간에 줄인 상태였다.
1996년 파리오픈국제유도대회에 출전한 김혁(60kg급)은 계체를 앞두고 마지막 100g이 빠지지 않자 감독에게 주사기로 피 100g을 뽑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침 한번 뱉으면 2g씩 빠진다’며 하루 종일 껌을 씹는 선수도 있었다. 국가대표라도 체중감량 비법은 없다. 적게 먹고 조금 마시고 많이 운동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근 ‘피겨 여왕’ 김연아가 2014 소치 겨울올림픽까지 현역 선수로 뛰겠다고 선언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다. 아이스쇼와 올림픽은 차원이 다른 ‘무대’이기 때문이다. 아이스쇼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고난도 기술을 구사할 필요가 없지만 올림픽에서 3회전 점프는 필수요소다.
물론 피겨스케이팅은 체급 종목이 아니다. 하지만 3회전 점프는 체공 시간이 길어야 하는데 이는 철저한 체중 조절 없이는 불가능하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이후 비로소 ‘체중조절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김연아는 스스로 ‘2년간의 금욕’을 선언한 것이다. ‘제대 후 2년간 일반인으로 살던 젊은이가 다시 2년간 입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복싱 유도 레슬링 등 체급 종목 선수들은 빠르면 3주 전부터 체중감량에 돌입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이미 런던 올림픽이 개막된 것이다. 그들이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체중조절 실패로 4년을 기다려온 ‘꿈의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태극전사들이여, 포기하지 말자. 이를 악물자. 체중감량 고통은 메달 색깔을 다툴 라이벌들도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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