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은 제17회 ‘환경의 날’이다. 1972년 6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최초의 유엔 환경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같은 해 11월 제27차 유엔총회에서 제정됐다. 그래서 유엔이 정한 제40회 ‘세계 환경의 날’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1996년 법정기념일로 채택해 올해가 17회다. 일부 환경단체는 이날을 기념해 ‘환경운동 30년’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 환경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17회 환경의 날과 환경운동 30주년은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엔보다 더 긴 환경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40년을 17년으로 자르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의 환경운동을 30년으로 잡는 것은 역사 왜곡에 가깝다.
우리는 독특한 환경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산업국들은 먼저 산업화를 추진하고 이후 심각한 환경문제를 겪은 다음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환경문제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함께 추진했다. 그래서 환경정책의 역사가 길다.
‘기아와 빈곤으로부터 해방’이라는 기치로 등장한 박정희 정부는 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시작으로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보건사회부에 공해방지법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가야 하고, 공업국으로 성장하려면 공해가 발생할 것이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63년 제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공해방지법’이다. 우리보다 산업화를 먼저 시작한 일본은 4년 뒤인 1967년 공해대책기본법을 제정했다.
1962년 산림법을 제정하고 1967년 산림청을 독립행정기관으로 만들어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한 것도 세계 환경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황폐해진 우리의 산에 지금까지 1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만들었다.
우리의 환경운동은 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농촌 근대화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후에 산림녹화, 하천 정화, 주택 개량, 상하수도 보급 등과 같은 생활환경 개선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환경단체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76년 환경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한국환경문제협의회(현 일사회)가 결성됐고, 1977년 자연보호협의회(현 자연보호중앙연맹)라는 전국 조직이 자연보호를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부 환경단체가 우리의 환경운동 역사를 30년으로 축소한 것은 1982년 창립된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염두에 둔 것이다. 1978년 경남 고리에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고, 1979년 울산공단 주변에 공해병이 발생하자 이때 반핵·반공해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본다면 반핵·반공해운동 30주년이 맞지만 환경운동은 이보다 훨씬 전에 시작됐다.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가 창립 목적인 유엔은 1972년을 기점으로 환경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유엔보다 환경 역사가 길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도하며 글로벌 환경 리더를 자임하는 우리가 ‘제17회 환경의 날’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