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 신용등급 추락, 한국에 거울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4일 03시 00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그제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두 등급 낮췄다. 일본의 등급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같아졌다. 피치는 일본의 향후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해 추가 강등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일본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39%로 피치가 신용평가를 하는 국가 중 가장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비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일본 국채의 대부분은 일본인이 보유해 국가부도 위험은 거의 없다. 일본인의 높은 저축 성향과 안전자산 선호 덕분이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며 외환보유액도 1조2000억 달러로 세계 2위다. 그러나 안심할 형편은 아니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국채 금리가 오르면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이미 정부 예산의 25%를 국채 이자로 지급하는 판이다.

일본의 국채 문제가 심각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 기능의 마비, 국가 리더십의 실종에 있다. 국가부채 해결을 위해서는 세수 증대가 필요하고 5%인 소비세의 인상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싫어할 세금 인상 얘기를 꺼내는 정당이 없다. 잦은 권력 교체로 여야가 권력 다툼에만 매몰돼 재정 건전화를 외면하고 있다. 피치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유도 문제 해결의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계 자금의 차입에 신중을 기하면서 일본 상황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 국가부채가 GDP 대비 34%로 아직 건전하지만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빠른 편에 속한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이 추세는 앞으로 가속될 것이다. 일본처럼 대외 채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경제 체질이 일본만큼 튼튼하지도 않다. 포퓰리즘 경쟁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하면 위험성이 더 커진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GDP는 1980년에는 한국의 17배, 1995년 10배였지만 최근에는 5배로 격차가 줄었다. 필리핀은 한때 아시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가정부를 해외로 가장 많이 내보내는 나라가 됐다.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라진다. 나라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영원한 1등’은 없다. 4·11총선에 이어 연말 대선을 앞둔 시점이다. 당파적인 정치 이슈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사설#일본#일본 신용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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