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도 과학이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 신재생에너지, 신종 인플루엔자, 구제역 사태, 원자력발전소 사고, 로켓 발사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 국민은 과학에 대해 과거보다는 많이 알고 있으나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만큼 과학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사회의 방향을 잡아주는 일이 절실하다.
미국의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과학과 관련된 국정 현안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수시로 조언한다. 미국 국민은 이들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2008년 촛불시위 때 과학자들은 침묵했다. 과학적 근거도 없고, 출처도 불분명한 광우병 괴담이 나라를 뒤흔들 때 과학자들의 모습은 촛불의 위세에 눌려 보이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밤새 연구에 몰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내야 한다. 신망받는 과학자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괴담은 힘을 잃는다. 때론 과학적 진실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 과학이 미신을 이긴다.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가정한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원자력의 불가피성을 주장해 환경운동단체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대안으로 내세운 원자력은 현실적으로 인류의 삶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과학자들이 진영 논리와 이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사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광우병이든 원자력이든 과학자들은 괴담의 허구성을 파헤쳐야 하고 국민은 과학자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 초고령 젖소 한 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해서 국내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단체는 “과학적 접근이 중요하긴 해도 국민적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지만 과학적 접근이 국민적 신뢰의 기초가 돼야 한다. 과학적 사실이 아닌 것을 국민이 믿는다면 그것이 곧 집단미신이다. 이런 미신과 괴담을 깨기 위해 과학계가 당당하게 나서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