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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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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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뱀과 친하게 지내는 꿈을 꾸면 ‘어려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것’이라고 해몽(解夢)했다. 흰 뱀을 보면 고결한 사람과 만나거나 결혼하며, 뱀 꿈을 꾸고 낳은 아이는 영특하고 예술에 두각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가르쳤다. 모두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화나 설화, 전래동화에서 뱀은 인간을 해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성경에서 뱀은 인간을 유혹해 선악과를 먹게 한 ‘사탄’이었다. 거의 모든 언어권에서 ‘뱀’은 음흉 사악 냉혹 교활 배신 등의 단어와 어울려 관용구를 이루거나 그런 뉘앙스로 쓰인다. 뱀이나 뱀을 닮은 신을 숭배하는 민족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대개 뱀의 마적(魔的) 능력이 강조된다.

▷뱀은 무섭다. 둘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검은 혀는 혐오스러우며 기는 모습은 징그럽다. ‘쉿’ 하는 소리도 섬뜩하다. 우리가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단지 뱀이 지닌 독의 위험성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지상에 포유류의 최초 조상이 나타난 것은 2억 년 이상 됐지만 65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할 때까지는 늘 파충류에 짓눌려 살아왔다. 뱀 같은 파충류에 워낙 오래 당하며 살다 보니 포유류 뇌의 깊은 곳에 파충류에 대한 ‘본능적 공포’가 각인됐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포유류는 파충류 포식자를 피해 주로 야간에 활동했기 때문에 몸집은 쥐 이상 커지지 못하다가 공룡 멸종 이후에야 커졌다. 본격적인 ‘포유류 시대’가 열리면서 포유류의 종(種)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뱀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우리는 분노나 적의를 표현할 때 뱀에 많이 의존한다. 심한 행동에 대해 ‘독사 같다’며 비난한다. 1988년 미국 영화의 직접배급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상영 극장에 뱀을 풀어놓는 사건이 벌어졌다. 1996년에는 공천에 탈락한 한 국회의원의 측근이 정당 행사장에 뱀을 가져온 적이 있다. 며칠 전에는 전북 전주에서 시내버스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민주노총 소속 한 노조원이 전주시청 현관에서 바지를 내리고 ‘×싸기’라는 배설 시위를 했다. 이어 노조원들은 어제 개막된 전주국제영화제 행사장에 뱀과 쥐를 풀겠다고 협박했다. 실제로 그런 일을 벌인다면 참으로 ‘뱀신’이 노할 일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뱀#신화#설화#전래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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