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 TALK’]<1>광고가 아니라 고백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제물포의 세창양행 앞에 모인 설립자 에드바르트 마이어(앞줄 오른쪽)와 회사 관계자들. 동아일보DB
제물포의 세창양행 앞에 모인 설립자 에드바르트 마이어(앞줄 오른쪽)와 회사 관계자들. 동아일보DB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해 본 사람은 알리라. 고백하는 순간 얼마나 진심을 담아 전달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광고 메시지도 그렇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인 세창양행 광고(한성주보, 1886. 2. 22)에는 광고 대신 ‘고백(告白)’이라는 카피를 쓰고 있어 이채롭다. 마치 애인에게 사랑 고백을 하듯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다.

한문으로 쓰인 카피는 모두 24행. 헤드라인은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이다. ‘덕상’이란 독일 상사라는 뜻. 개화기 무렵에는 도이치(deutsch)에서 ‘덕’이라는 음을 따와 독일을 덕국(德國)이라고 했다. 광고를 보면 세창양행이 한국에서 사가는 물건에는 소, 호랑이, 말, 수달 가죽, 오배자, 동전 따위가 있다. 한국에 들여와 파는 수입품은 염료, 천, 허리띠, 서양 못, 램프, 성냥 같은 서양 물건이다. 세창양행은 오퍼상이었던 셈.

광고에 나타난 ‘자래화(自來火)’라는 성냥 이름이 재미있다. 부싯돌로 불을 붙이던 그 무렵, 스스로(自) 켜지는(來) 불(火)이라는 뜻의 브랜드 네임을 붙였을 것이다. 당시 중국 상하이에서도 자래화가 인기였는데, 당시에 성냥이란 아찔할 정도로 놀라운 서양 문물이었으니까.

세창양행 광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라는 데 의의가 크다. 사회경제적 맥락에서도 우리의 개화기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세창양행을 통해 우리의 소비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으며 세창양행 광고는 그 과정에 일조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광고 외에도 개화기에는 세창양행의 광고가 많다. 이 회사의 광고는 우리 사회에 서양 문물을 소개함으로써 근대성에 눈을 뜨게 했지만 독일의 경제적 첨병 역할을 하기도 했다.

5월에 열릴 예정인 일민미술관의 한국광고 120년 전시회 주제도 ‘고백’이다. 지난 120년 동안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속삭여 왔는지, 그 아찔한 사랑 고백을 이 전시회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