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찰 은폐 공작용 ‘관봉 5000만 원’ 출처 밝히라

  • 동아일보

류충렬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지난해 4월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건넨 5000만 원은 관봉(官封) 돈뭉치였다. 관봉은 한국조폐공사가 신권을 찍어 한국은행에 보낼 때 십자 띠 모양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관봉 돈뭉치는 시중에서 흔히 유통되는 것이 아니어서 출처가 어딘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돈의 흐름만 파악해도 불법사찰 사건을 은폐하고 증거인멸을 지휘한 ‘몸통’이 누구인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장 전 주무관이 받은 5000만 원은 5만 원 신권 100장씩을 묶은 뭉치 10개가 비닐로 압축 포장된 것이었다. 관봉 기호와 포장 번호, 지폐 일련번호가 적혀 있다. 금융기관들은 한국은행에서 받은 관봉 형태의 돈다발을 고객의 요청에 따라 지급하기도 하지만 그리 흔하지는 않다고 한다. 더구나 5000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이런 식으로 인출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문제의 돈은 누군가가 특별한 목적으로 인출해 보관하다가 어떤 경로를 거쳐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네졌다고 유추할 수 있다.

류 전 관리관은 당초 “위로금 차원에서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관봉 돈뭉치가 노출돼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는 어제 “나중에 직원들이 십시일반하기로 하고 우선 내가 융통해준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지만 믿기 어렵다. 돈을 건넨 이유도 장 전 주무관이 2심 판결을 받은 직후 돈이 전달됐다는 점에서 은폐 폭로를 막으려는 ‘입막음용(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류 전 관리관 이외에 최종석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4000만 원,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 2000만 원을 장 전 주무관에게 줬다.

한국은행이 관봉 형태의 돈을 금융기관에 전달하고, 금융기관들은 돈을 유통시킬 때 관봉의 포장번호와 지폐 일련번호를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누가 인출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2000만 원 이상의 현금 입출금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가 되는 만큼 추적하면 인출자를 찾아낼 수 있다. 1970년대 초 미국 정가를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도 워터게이트 빌딩에 잠입한 범인들이 사용한 돈의 출처가 중요한 단서가 됐다. 검찰이 1차 수사에서 잃은 신뢰를 회복하려면 관봉 돈뭉치의 임자부터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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