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엔 일본의 야쿠(屋久) 섬을 찾았다.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남쪽으로 163km 떨어진 아열대 섬으로 유네스코가 숲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유명해진 곳이다. 도대체 얼마나 귀중한 나무가 있기에, 그 숲에 어떤 가치가 담겨 있기에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의 숲이 세계유산에 등재됐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사전 취재를 하던 도중 나는 흥미 있는 사실 하나를 찾아냈다. 미야자키 하야오(애니메이션 감독)의 대표작인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 바로 이 섬의 숲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숲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를 담고 있다.
그 숲은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峽)’라고 불렸다. 위치는 자동차로 오른 산중턱에서 도보로 왕복 다섯 시간 거리의 해발 1000m 고개 아래에 있었다. 이곳의 산은 길도 멋졌다. 돌과 나무로 잘 다듬어졌고 수령 1000년의 삼나무가 포진한 깊은 숲을 관통했다. 원숭이와 사슴도 심심찮게 만날 만큼 평화로웠다. 하지만 잘려나간 고목도 많았다. 세금 대신 거둬들인 17∼19세기 봉건시대 남벌의 현장이다.
드디어 영화의 배경이 된 계곡에 당도했다. 숲은 첫인상부터 신비로웠다. 바위와 나무를 온통 뒤덮은 초록 이끼 덕분이었다. 어둡다 할 정도로 짙은 녹음(綠陰)도 한몫했다. 촉촉한 습기를 뚫고 전해오는 계곡의 물소리에 공기는 한층 싱그러웠다. 이런 숲이라면 영화처럼 정령이 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시라타니운스이쿄를 벗어나면 다이코이와라는 너럭바위에 오르게 된다. 숲 밖 산악의 전경은 거기서야 비로소 조망됐다.
거기서 본 야쿠 섬의 거대한 산악. 곳곳에 화강암 절벽을 드러낸 이 험준한 산은 온통 원시림이다. 하지만 능선을 중심으로 한 20%만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남벌을 피한 수령 1000년 이상 삼나무가 거기 주로 남아서다. 1000년 이상된 나무가 많다 보니 야쿠 섬에선 삼나무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1000년 이상의 야쿠스기와 그 이하의 고(小)스기, 2000년 이상의 조몬스기로 최고 수령은 2200∼7200년으로 추정된다.
섬의 삼나무가 보호된 지도 벌써 144년. 메이지유신(1868년)은 삼나무 남벌 금지까지도 규정한 선진체제였다. 하지만 이웃한 대만엔 아리 산 거목 남벌의 전주곡이 되었다. 청일전쟁 후 진주한 일본은 야쿠 섬 삼나무를 대신해 아리 산의 삼나무를 베었다. 1912년부턴 산악철도(총연장 86km)에 미국제 삼림 운반 전용 증기기관차까지 동원해 이후 33년간 키 70m에 지름이 4m에 이르는 수령 1000∼2000년의 신목(神木)―대만에선 삼나무 거목을 이렇게 불렀다―을 샅샅이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신사와 사찰, 궁궐, 불상, 다리 건축용이었다.
야쿠 섬의 숲은 정녕 아름다웠다. 자연의 응징을 숲을 배경으로 전달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과 메시지 또한 훌륭하다. 그러나 야쿠 섬의 세계유산 숲 뒤엔 이제 신목이라고는 스무 그루밖에 남지 않은 아리 산의 슬픈 현실이 숨겨져 있다. 이 두 숲을 모두 본 내가 어찌 야쿠 섬의 숲만을 칭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과에 인색한 일본이라지만 야쿠 섬 어느 한구석에라도 대만 아리 산의 만행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사과하는 글 한 줄쯤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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