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吉林) 성 산하 창바이산(長白山) 보호개발구관리위원회는 2007년 8월 중장비를 동원해 백두산의 중국 쪽 지역에 있던 ‘온천별장’(법인명 길림장백산관광건강오락유한공사) 호텔 건물을 헐었다. 이 호텔의 사장은 한국인 박범용 씨였다. 성 정부가 백두산에 관광호텔을 유치할 때 15∼45년의 운영기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박 씨는 불도저 앞에 맥을 못 썼다. 우리 정부도 나섰지만 중국 외교부는 못 들은 척했다.
만약 한국과 중국 사이에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있었다면 일이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ISD란 정부가 당초 약속(투자협정, 투자인가, 투자계약)을 지키지 않아 외국인 투자가가 손해를 볼 경우 해당국 법원이 아니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고, 해당국 정부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창바이산 온천별장이 헐릴 때는 한중 투자보장협정(BIT)에 ISD가 없었지만 호텔이 철거된 뒤인 2007년 말 양국은 협정을 개정해 ISD를 포함시켰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한중 간 약속은 어제 한중일 BIT 타결로 더 확실해졌다. 기존의 한중 BIT보다 높은 수준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번 BIT에 있는 ISD 조항의 내용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ISD와 거의 같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ISD가 우리의 정책주권 및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한미 FTA를 반대하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한중일 BIT에도 반대할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이 85개국과 맺고 있는 BIT 중 81개국과의 협정에 ISD가 들어 있다. 미국 이외의 나라와 맺은 FTA에도 들어 있다. 똑같은 ISD라도 미국과 체결한 것만 나쁜가. 한중일 3국은 서로에게 가장 긴밀한 교역 및 투자 파트너다. 이번 협정의 타결로 3국의 경제협력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한중일 FTA 협상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FTA의 주요 축인 투자자 보호가 합의되면 곧바로 상품관세 및 서비스시장 장벽 철폐 등을 논의할 수 있다. 통상교섭본부는 한중 FTA와 한중일 FTA를 함께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중일 경제협력의 활성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