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일벌백계 딜레마

  • Array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일벌백계(一罰百戒). 그럴싸한 사자성어다. 한 명에게만 본때 보이면 나머지 모두가 정신 바짝 차려, 재발까지 방지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효율적인가.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군주의 총희(寵姬) 목을 베, 오합지졸 궁녀 수백 명을 순식간에 정예군(軍)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손자병법이 통했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효험이 있었을지 몰라도 21세기에는 어림도 없다.

왜? 백(百)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각종 인권 법으로 보호받고 있어 함부로 손댈 수 없다. 익명성이 탁월한 대중(大衆)에게 일(一)이 엄벌을 받은 것은 남의 불행일 뿐이다. 선처를 약속해도 자수란 없다. 그리고 인간은 망각의 존재다. 처음엔 식겁하겠지만 점차 무뎌지기 마련이다.

이런 까닭에 제아무리 단호한 어조로 일벌백계를 외쳐도, 매년 테마주(株) 작전세력은 준동하고 기업 총수의 각종 경제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 조작 파문으로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힌 상황에서도 프로배구와 프로야구에서는 경기 조작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구지검은 현역 선수는 2명만 적발, 기소하는 선에서 프로야구 경기 조작 사건 수사를 14일 사실상 종결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추측이 무성하다. 그중 하나가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판을 깰 수야 없지 않은가’라는 통 큰 배려라는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한가지. 검찰도 혹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벌백계 지상주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대구지검은 이날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도덕적 해이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마련됐을 것으로 본다”고 발표했다. 전형적인 일벌백계 사례다.

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관련 단체와 감독기관의 대책 발표문에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양 ‘일벌백계로 엄벌하겠다’는 문장이 들어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필자에게는 ‘비리 연루자를 모두 색출해 처벌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한 명만 잡아도 만족이다’라는 하소연으로 들린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 엄벌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불법 사이트를 통해 베팅만 해도 처벌(5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 벌금)할 수 있게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돼 시행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단 한 건도 적발하지 못했다. 여전히 불법 베팅 사이트가 성업 중이고 주요 경기 당일에는 수천 명이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건만…. “불법 도박 사이트 서버가 외국에 있고 수시로 사이트의 개설과 폐쇄를 반복하고 있어 베팅자 추적이 사실상 어렵다”는 검찰의 발표는 오히려 불법 베팅자에게 안도감을 줄 뿐이다.

엄포에 불과한 일벌백계는 ‘유사 면죄부’나 마찬가지다. 자수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녀석들’은 쾌재를 부르며 발 뻗고 잘 것이다. 반면 시범타로 잡힌 몇몇은 억세게 재수없음을 한탄하지 않을까.

스포츠 담당 데스크인 필자가 프로스포츠의 붕괴를 원할 리 만무하다. 누가 완봉승 거두고 홈런치고 골 넣고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 ‘누가 검찰에 소환됐다’는 전문 분야도 아닌 뉴스를 다루는 것은 스트레스다.

하지만 원칙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말이 있다. 죄가 있는 곳에는 벌이 따라야 한다.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줘야한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은 꼭 지켜져야 한다. 원칙이 흔들림 없이 지켜지는 것만큼 확실한 재발 방지책은 없다.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