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워킹맘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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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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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얼마 전 ‘남성들의 성역’으로 여겨지는 분야에서 발탁 승진한 여성들의 단체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힘든 업무 환경 속에서 어떻게 가정을 돌보냐는 질문에 이들은 “걱정 없다”고 했다. 한 명은 출산 직전까지 야근을 하다 양수가 터졌다는 일화를 풀어 놓았다.

성공한 여성에 대한 지극히 전형적인 스토리다. 성공한 남성의 이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정과 출산 문제가 꼭 등장한다. 또 ‘난 괜찮아’라는 답이 빠지지 않고 이어진다.

같은 워킹맘으로서 필자는 “저 사람들은 정말 걱정이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야근 중에 양수가 터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직장 동료는 알까? 아니, 임산부의 야근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사실은 알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 인터뷰를 접한 수많은 워킹맘들(물론 필자를 비롯한)은 얼마나 좌절할까 한숨이 나왔다.

사회 각 분야에서 우뚝 서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이들의 성공기는 주로 신화나 무용담 수준이다. “일과 가정을 다 챙기느라 너무 힘들다”거나 “솔직히 어느 하나는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고백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포녀(가정을 포기한 여자)’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공고해지고 있다.

수사 분야에서 발군인 여성 검사가 있다. 그는 지방 발령을 받을 때마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남편과 시댁의 압박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 전문직인 남편은 오후 6시면 ‘칼퇴근’을 하는 반면 자신은 시도 때도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두 번의 지방 근무 동안 입주 도우미를 몇 번 씩 바꿔가면서 죽도록 일해도 늘 마음이 불편하다. 직장에서는 ‘혼자 애 보느라 제대로 일을 안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집에서는 애한테 소홀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여기에 ‘내가 너를 아들 못지않게 키웠는데…’라며 더 성공하기를 바라는 친정의 기대치까지 더해진다.

그는 지난해부터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물론 직장에도, 집에도 이런 사정은 말하지 못했다. 실패한 여성으로 낙인찍힐 게 뻔하니까…. 말해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으니까….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여성의 전형이지만 속은 곪아가는 것이다.

대다수 워킹맘은 힘든 바깥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가사와 육아에 시달린다. ‘일하는 아빠’는 당연하지만 아직 ‘일하는 엄마’는 당연하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집안일은 으레 여자 몫이다.

워킹맘 스스로도 자꾸 전업주부와 비교하며 ‘내가 우리 아이한테 못할 짓을 하나’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혼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88%가 맞벌이를 원하는 시대라지만 워킹맘에게는 여전히 사회인, 안사람, 엄마라는 세 가지 역할, 게다가 요즘은 ‘잘난 딸’의 모습까지 요구하는 시대이다.

최근 곳곳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캠페인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마저 워킹맘에게는 또 다른 굴레가 될 수 있다. 남성이 가정을 잘 돌보면 다정하고 선구적인 아빠가 되는 반면 여성에게는 ‘역시 애 엄마’라는 핀잔이 돌아오니까.

워킹맘 잔혹사를 끝내려면 후진 환경부터 바뀌어야 한다. 일부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말할 정도로 사회가 변하는 중이지만 워킹맘은 아직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애 엄마라서 회식 야근 주말행사에 빠진다고 욕하지 말고, 육아와 가사의 주된 책임자를 여자의 몫으로 여기는 전근대적인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업무 이외의 시간도 헌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후진적인 조직 문화도 재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퇴근길 차 속에서 혼자 있을 때 그나마 살 것 같다”고 말하는 ‘성공한 여성’들의 비극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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