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이미 사회에 진출한 대학 동아리 선배에게서 한 끼 식사를 얻어먹은 서울 K대 학생 11명은 한 달 뒤 ‘날벼락’을 맞았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이들에게 음식값 20만7000원의 26배가 넘는 546만8700원의 과태료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날 밥을 산 선배는 올해 4·11총선에 출마하려는 민주통합당 서울지역 K 예비후보의 ‘선거운동원’ S 씨였다. S 씨는 K 씨의 명함을 건네며 당내 경선 때 지지를 호소했지만 누구도 이를 심각한 선거법 위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1인당 최고 56만9700원의 ‘과태료 폭탄’을 맞을 때까지는.
반면 KBS 대구방송총국에 근무하는 L 기자는 최근 ‘대박’을 맞았다. 4·11총선 예비후보자 측근에게서 현금 100만 원이 함께 든 프로필 문건을 받고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더니 중앙선관위가 1억2000만 원의 포상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L 기자의 신고 내용을 토대로 이 예비후보가 4000만 원을 살포한 사실을 밝혀내고 포상금을 통상 지급비율(신고 액수의 20배)보다 크게 높였다.
선거범죄 신고 포상금 제도는 2004년 3월 선관위가 금권선거 근절을 위해 마련한 제도다. 하지만 신고 실적이 시원치 않자 2006년 1월 5000만 원이던 포상금 한도액을 공천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거나 거액의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수수하는 등 일부 중대 범죄에 한해 5억 원으로 크게 올렸다. 지난해 8월엔 후보 매수 행위도 포함시켰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 매수 비리가 터진 뒤 이에 대한 포상금이 5000만 원으로 너무 적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포상금의 상향 조정은 4·11총선을 앞두고 곳곳에서 내부고발이 잇따르는 등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선관위의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가 아무리 고치려 해도 60년 이상 온존해온 한국의 금권선거 풍토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금권선거 못지않게 한국의 유명한 적폐는 뇌물범죄다. 뇌물범죄는 주거나 받는 당사자에게는 큰 이익이지만 다수의 관련자나 전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강도 절도 등 전통적 범죄보다 악영향이 크다. 강도나 절도는 훔치거나 빼앗아간 금품이 피해액이지만 뇌물범죄의 피해액은 수수 액수의 100배를 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범죄 성격상 뇌물죄의 적발률은 극히 낮다. 처벌도 약하기 그지없다. 무죄율은 일반 형사범의 3∼5배에 이르고 유죄가 인정돼도 뇌물로 받은 돈만 토해내면 그만이다. 선거범죄는 갈수록 당선무효형이 많아지는 데 반해 뇌물범죄는 실형 선고율이 갈수록 낮아진다. 선거사범처럼 10∼50배를 물리는 과태료 폭탄도, 제보자에게 20배 안팎을 주는 신고보상금도 없다. 범죄의 금전적 이득을 감안할 때 뇌물은 받아도 잘 안 걸리고, 걸려도 무죄 가능성이 높으며, 유죄라도 받은 돈만 토해내면 그만이니 ‘맘 놓고 받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183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뇌물도 선거범죄처럼 받은 사람이 걸리면 10∼50배 물어내도록 하고 신고한 사람에게 20배씩 포상금을 지급하면 어떨까.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사회 전체 구성원의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뇌물범죄는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내부고발을 적극 장려하고 뇌물을 받은 사람은 패가망신하도록 하는 강력한 예방 및 처벌 대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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