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초콜릿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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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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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그룹의 온라인금융 부문인 ING다이렉트USA가 2010년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섹스와 초콜릿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여성이 초콜릿을 선택했다. 미국 여성만 그렇겠는가. 꿀꿀한 기분을 한순간 날려버리는 데는 초콜릿만 한 게 없다. ‘달콤 쌉쌀한 초콜릿’의 오묘한 맛에는 누구라도 저항하기 힘들어 초콜릿은 ‘사랑의 묘약’으로도 불린다.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는 초콜릿업계의 가장 큰 대목이다. 연간 초콜릿 판매량의 3분의 1가량이 2월에 판매된다.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남녀를 황제 허가 없이 몰래 결혼시켜 준 죄로 순교한 로마시대 사제 성 발렌타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초콜릿을 주고받는 풍습은 백화점과 제과업계가 만들어낸 상혼(商魂)이다. 장삿속 밝은 일본 제과업계가 이날 초콜릿을 선물하자는 캠페인을 벌여 성공한 뒤 한국에도 상륙했다. 초콜릿이 그날 많이 팔리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여성이 사랑을 고백할 때 초콜릿은 필수품처럼 돼 버렸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는 카카오나무의 열매다. 전 세계 카카오의 70%가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 서남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10m가 넘는 카카오나무에 올라가 콩을 수확해 씨를 빼내고 말리는 일을 하는 근로자 대부분이 6∼12세 어린이다. 몸집이 큰 어른이 되면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기 힘들다. 온종일 일하느라 학교도 포기하는 아이가 많다. 이들이 뙤약볕에서 일해 받는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가족이 생계를 이어간다.

▷값싼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아동노동력 착취를 방관하는 네슬레 등 세계적 초콜릿기업의 비윤리성이 곧잘 도마 위에 오른다. 한때 초콜릿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카카오농장 어린이들은 반대했다. 초콜릿을 소비해 주지 않으면 당장 밥줄이 끊긴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카카오 열매 따기를 못 하게 하면 더 위험한 다른 노동에 종사하거나 성매매의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해결책은 어린이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만들어진 ‘공정무역 초콜릿’을 소비하는 일이다. 달콤한 초콜릿에 어린이들의 쓰디쓴 눈물방울이 들어 있다. 사랑에 눈먼 청춘 남녀들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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