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봉투 수사 의뢰 않는 민주당의 舊惡 체질

  • 동아일보

민주통합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연초에 한 인터넷 매체가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제기했고 KBS도 지난해 12월 지도부 예비경선 때 화장실에서 돈봉투가 오갔다는 경선 후보 관계자의 증언을 그제 보도했다. 검찰도 자체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2차 돈봉투 논란에 쉬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자는 말도 나오지 않고 있다. 1차 논란 때는 당 진상조사단이 근거 없다고 결론 내렸다가 겉핥기 부실 조사라는 역풍을 맞은 적이 있다.

과거 돈봉투 의혹에 대한 민주당 내부 증언도 여러 곳에서 나왔다.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낸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공개적으로 “금품 살포를 목격한 바도, 경험한 바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나라당만 비난할 뿐 자당의 의혹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한다. 전형적인 이중 잣대다. 구태 정치 청산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2004년 3월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불법 정치자금이 창당 자금으로 일부 유입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자 곧바로 당사를 서울 여의도에서 영등포 농협 청과물공판장으로 옮겼다. 불법 정치자금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8년이 지난 요즘 민주당에서 그런 결기는 찾아볼 수 없다. 한명숙 신임 대표 체제가 한나라당과 치열한 쇄신 경쟁을 벌여야 할 상황에서 돈봉투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구악(舊惡) 정치를 청산할 의지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철저한 진상조사를 거쳐 검찰 수사를 의뢰하는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

박희태 국회의장실이 2008년 한나라당의 전대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국회의장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입법부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는데도 박 의장이 의장직 사퇴를 거부하고 버티는 게 능사(能事)인지 냉철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전당대회 때 관광버스 비용이나 식사비를 중앙당에서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당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짝짜꿍을 맞추고 있다. 현행 정당법은 경선에 참여하는 당원에게 여비를 제공하면 ‘매수 및 이해유도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돈봉투 사건에 분노하는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낯 뜨거운 정치적 담합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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