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신달자]오래전부터 묵상집을 꿈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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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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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시집-산문집과 달리, 할수 있다면 탄식조를 피해
삶에 대한 반성문 담고 싶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좋은 묵상집 하나를 쓰고 싶다.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다. 그동안 많은 책을 냈다. 책이라면 진력이 날 만도 하다. 그 책들도 엄밀히 말하면 내 묵상을 통해 쓴 글들이니 묵상집이라고 말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썼던 시집이나 산문집들과는 전혀 다른 내 생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과 반성, 생이라는 백년 시간에 맞닥뜨리는 수많은 내 갈증과 의문, 그리고 내 생에 대한 질문과 해답까지를 아우르는 침묵과 명상을 통해 조용히 나와 마주하는 묵상집을 쓰고 싶은 것이다.

자신과 마주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늘 내가 두려웠다. 나를 이기면 다 이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나는 나와 마주하면서도 그 부자연스러운 고통과 불편을 전혀 느끼지 않는 진정한 나와의 화해를 이루는 그런 묵상집을 내가 낼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나는 잘못 살아온 일들이 많다. 그 잘못 살아온 일들에는 내가 인간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일들도 있지만 나의 게으름으로, 내가 감상에 빠져서 내가 쉽게 포기하여서 그리고 의무를 은닉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 않은 일과 한 일들이 모두 잘못 엉켜 내 인생이 고단하고 그 피로가 남들에게도 흘러들어간 과오 또한 내 묵상집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할 수 있다면 탄식조를 피해 냉철하고, 냉철하지만 고요하고 편안한 묵상집을 쓰고 싶다. 어쩌면 참회록에 가까운 묵상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에 딱 한 권 필요한 반성문이면서 내가 닿고 싶은 어느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본격적인 묵상집은 내가 오래전부터 꿈꾸어 오던 것이다.

내가 나의 묵상 속에서 조용한 화해를 이루고, 아니 화해조차 느낄 수 없는 조용한 묵상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따뜻한 행복감을 만나는 그런 정신적 공원을 책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그 공원에서 잠시 쉬는 사람들에게 나는 참으로 갈증을 풀어내는 깨끗한 물 한 잔을 나눠 드리는 다른 행복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기부다.

나는 부산한 가운데 외로웠지만 외로움은 미숙한 내 감정을 한 단계 넘어설 수 있게 하였고, 눈물이 많았지만 내 삶의 땅을 더 견고히 했고, 고통은 오히려 부실한 나를 더 보호하였다. 어떠한 사태도 인간이 고통에 대처하는 능력을 제한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작고 보잘 것없는 벌레 한 마리가 대우주 속에서 꿈틀거리며 제 생명을 이어가는 순응의 몸짓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느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신의 평화와 마음의 휴식을 원한다. 그런데 이것은 마음 안에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 왜 그렇게 그것은 멀고 누리기가 어려운지 모른다. 제 안에 있는 마음이 바로 ‘적’이라는 말은 옳은 것 같다.

‘루르드’라는 프랑스의 치유의 성당 미사에서 몸이 완전히 마비되고 눈동자만 빛나는 환자들과 눈물의 미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침대에 누운 환자들이 1000명도 넘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는 경이와 기적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와 행복한 표정으로 그 거대한 성당을 빛나게 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 놀라운 경이의 대열을 보면서 저런 완전한 빛이 인간 세계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깊은 묵상의 우물이 그 인생에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고통의 실체를 내리고 온화하고 고요한 묵상의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아름다운 힘이 아니겠는가.

신달자 시인
신달자 시인
그런 세계는 내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할 곳인지 모른다. 나는 성지를 돌아보기로 마음먹는다. 국내에도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성지들이 많다. 해외에도 꼭 가 보고 싶은 성지들이 남아 있다. 그런 성지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좁히고 분명하게 묵상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 싶어진다.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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