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표류했다가 어제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9명 가운데 한 명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백남운의 손자라고 일본 당국의 조사에서 밝혀졌다는 소식이다. 남한에 살다가 1947년 월북한 백남운은 초대 교육상과 과학원 원장을 지낸 북한 고위층 인사다. 이 탈북자는 부친이 한국인 납치 등을 지휘했던 노동당 간부라고 진술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 탈북자는 북한 주민 중에서도 상당한 특권을 지닌 상류층에 속한다. 북한 내부의 체제 불안이 심각한 수준에 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년 전부터 탈북을 계획했다는 이들은 “아이들 장래를 생각해 탈출을 결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배 안에 미화 수천 달러와 중국 위안화를 갖고 있었다. 북한 근로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이 2달러를 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큰돈이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북한의 여유 계층 같아 보인다. 북한의 경제 통제가 한계에 봉착했음도 알 수 있다.
탈북자 일행은 비밀리에 단파 라디오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외부 세계의 정보를 얻으면서 탈북을 면밀히 준비했다. 이들은 먼저 탈북한 친척과 북-중 국경지역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우편물로 정보를 교환했다. 관영 라디오 청취만 허용하고 인터넷을 차단해 주민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려는 북한 당국의 감시와 통제가 한계에 이르고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은 2005년 이후 매년 국가예산에서 130만 달러를 대북민주화 지원자금으로 책정해 한국의 열린북한방송 자유조선방송 등 대북(對北) 단파방송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에 단파 라디오 보내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NED 관계자는 “단파방송은 한국이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라디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정작 한국 정부는 북한 주민에게 김정일 왕조 체제의 허상을 알려주고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일에 소극적이다. 국회는 북한인권법 처리를 6년째 미루고 있고 탈북자들은 바다 건너 미국 의회를 찾아가 북한의 인권참상을 고발하는 부끄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한국에서 북한 주민과 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