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오바마의 경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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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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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12월 16일 밤 미국 보스턴 항에 정박한 영국 동인도회사 선박에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배에 실린 수백 개의 홍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영국이 홍차에 과도한 세금을 물리자 식민지 미국인들이 불만을 품고 일으켰다. 이후 보스턴에선 격렬한 조세저항 운동이 벌어졌다. ‘보스턴 티파티(Tea Party)’라는 단체가 운동을 주도했다.

▷여기서 유래한 티파티 운동이 미국의 차기 대선 구도를 뒤흔들며 보수 정치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티파티는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는 정책을 내놓자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결성했다. ‘작은 정부, 적은 세금’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채무 감축, 복지정책 축소 같은 강령을 내세우며 전국적인 정치운동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폴 크루그먼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로부터는 ‘어떠한 책임 있는 정책도 가로막는 극단주의자들’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티파티는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미 연방정부 부채한도 증액협상에서도 최대의 승자가 됐다. 티파티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예산 삭감을 통한 재정적자 감축과 증세 반대를 시종일관 밀어붙인 끝에 관철시켰다. 이런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에 공화당 지지도는 하락했지만, 티파티 의원들의 당내 위상은 오히려 확고해졌다. 롬니-바크먼-페리 3파전 양상의 공화당 차기 대선주자를 꿰는 공통분모도 ‘티파티 DNA’다.

▷내년 대선에서 오바마와 맞붙어 볼 공화당 후보들은 일단 티파티의 눈도장부터 찍고 있다. 13일 아이오와 스트로폴(비공식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여성 의원 미셸 바크먼(55)은 티파티 지지의원 모임을 주도했다.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64)는 부채한도 증액협상에서 티파티와 착착 보조를 맞췄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61)도 낮은 세금과 규제 완화 정책 덕분에 티파티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 이후 티파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공화당 후보들에게 티파티의 지지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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