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군, 고엽제 조사 미적거리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전직 주한미군 병사들이 1978년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들어 있는 고엽제 드럼통을 묻었다고 주장한 경북 칠곡군 왜관읍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대해 미 8군 사령부는 지난해 오염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환경부가 최근 이 보고서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하자 미군 측은 최종본이 나오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미군은 작년 보고서 작성 때 수집된 자료를 일단 공개하고 최종보고서는 언제까지 제출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미군은 그제 2개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하나는 2004년 미군의 의뢰를 받아 삼성물산이 작성한 환경오염 보고서이고, 다른 하나는 1992년에 나온 미 육군 공병대 보고서다. 두 보고서는 모두 7년 이상 지난 것이어서 이들 보고서만으로는 현재의 미군기지 오염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2004년 보고서에는 기지 내 토양에서 고엽제에서 나올 수 있는 다이옥신이 미량이지만 검출됐고, 기지 내 지하수 시료에서는 먹는 물 수질 기준을 1110배나 초과한 발암물질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이 나왔다는 내용이 있다. 게다가 최근 한미 공동조사단이 조사한 결과 왜관 미군기지 밖에 있는 지하수 관정에서 수질 기준의 2.6배 농도의 PCE가 검출됐다. 이 지하수는 기지 내 오염이 심각한 지역에서 불과 200m 떨어져 있는 데다 근처 아파트 주민 300여 명이 1992년부터 최근 관정이 폐쇄될 때까지 마시고 생활용수로 사용했다니 주민의 불안이 클 것이다.

초미의 관심사인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 수백 개의 행방에 대해서도 미 육군 공병대 보고서에는 “캠프 캐럴에 저장됐을지도 모른다” “베트남전쟁 기간에 저장됐다가 이후 기지 밖으로 운반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고가 있다”고 오락가락한다. 삼성물산 보고서에는 “드럼통이 채굴돼 옮겨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돼 있다. 작년에 실시한 오염실태 조사에서 검출된 다이옥신 양을 과거에 검출된 것과 비교하면 아직도 캠프 캐럴 내에 고엽제 드럼통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지 주변에 사는 주민뿐 아니라 오염된 기지에서 근무하는 미군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고엽제 진상 조사에 미군은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미군이 조사를 미적거린다면 한국 안보에 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반미감정을 자극해 건강한 한미 동맹관계를 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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