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000∼2011년에 주유소 관리를 담합했다는 이유로 4개 정유회사에 과징금 4349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정유사들이 2000년 3월 ‘석유제품 유통질서 확립 대책반’ 모임을 갖고 주유소 관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모임에서 정유사들은 ‘서로 경쟁하지 말고 편하게 사업하자’고 담합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고안한 이른바 ‘원적(原籍) 관리’는 주유소가 거래 정유사를 A사에서 B사로 바꿀 경우 A사의 동의서를 받아 B사에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주유소 사업자들은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대부분 정유사 바꾸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C사가 불가피한 이유로 D사와 거래하던 주유소를 인수하게 되면 매출액이 비슷한 다른 주유소를 D사에 넘겨주기도 했다고 한다.
정유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그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SK에너지는 2000년 36.0%에서 2011년 35.3%, GS칼텍스는 26.5%에서 26.8%, 현대오일뱅크는 20.9%에서 18.7%, 에쓰오일은 13.2%에서 14.7%로 미미하게 바뀌었을 뿐이다. 담합 체제라면 정유사들이 굳이 휘발유의 공급 가격 인하나 품질 개선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4개 업체가 나눠 갖는 과점 정유시장에서 담합은 소비자 선택권을 빼앗고 편익을 침해한다.
정유사들은 “정유사 사이의 경쟁은 계속 이뤄져 왔다”면서 공정위 처분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공정위가 이번 처분 과정에서 법적 절차나 해석에서 오류를 저질렀다면 패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담합 결정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토록 오래 계속돼온 담합을 어째서 이제야 밝혀냈는가. 물가관리 차원에서 정유사들을 압박하려다 보니 전부터 쥐고 있었던 카드를 뒤늦게 꺼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공급자들이 담합을 하면 소비자들은 매출액의 10∼15%만큼 손해를 본다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이다. 담합에 가담하는 기업들은 기술개발이나 마케팅 경쟁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그만큼 기업 내부의 혁신 노력이 퇴화한다. 소비자를 위해서나 기업을 위해서나 담합은 사라져야 한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면서 자신들의 이익도 추구해야 옳다. 그래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지지받고 기업들도 더 발전할 수 있다. 담합 근절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