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진]인터넷 회선감청 제한적 범위서 허용돼야

  • Array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최근 전교조 출신 전직 교사가 북한 사회주의체제로의 흡수 통일을 주장하는 ‘통일대중당’이라는 친북단체를 조직하려다 적발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에서 ‘인터넷 회선 감청(패킷 감청)’을 했는데 그것은 기존 감청과 달리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통신 내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 헌법이 보장한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수사기법이라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는 보도를 봤다.

과연 ‘인터넷 회선 감청’은 위헌일까? 일부 사람은 감청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지나친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감청은 범인 검거를 통한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사생활 침해라는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가 감청을 불허하지는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감청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감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암호기술을 1990년대까지 통제해 왔으며, 통신 서비스 사업자에게 국가가 원할 때 감청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것을 법으로 요구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암호 통신이 이루어진 경우 이를 해독할 수 있는 키를 요구할 권한을 수사기관에 부여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거의 모든 국가에서 감청을 인정하고 있으며, 불가능한 경우를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면 인터넷 회선 감청은 일반 전화 감청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전화 감청은 음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인터넷 회선 감청은 음성 정보를 포함한 여타 정보까지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형태의 통신 매체가 등장하였으며, 이를 이용한 범죄 역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감청 역시 필요하며 통신비밀보호법도 이런 이유로 모든 형태의 전기통신에 대한 감청을 허용하고 있다.

인터넷 회선을 지나가는 패킷 데이터는 음성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각종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포함돼 있어 인터넷 회선 감청을 하면 모든 행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는 많은 서비스에는 암호기술이 자동으로 탑재돼 있어 현실적으로 인터넷 회선 감청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인터넷 뱅킹, 일부 보안을 강화한 외국계 웹메일과 웹사이트, 가상 사설망 등은 데이터가 암호화되기 때문에 감청을 해도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며, 우려하는 것처럼 모든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인터넷 회선 감청은 동일 회선을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의 통신까지 감청하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일반 전화 감청 역시 동일 전화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의 통화 내용이 노출되기 때문에 인터넷 회선 감청과 전화 감청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어 보인다.

통신비밀보호법의 내용을 보면 다른 수단으로는 범죄 사실을 규명할 수 없을 때만 예외적으로 법관의 허가를 득하여 수행할 수 있고, 그것도 목적을 달성하면 즉각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감청 대상과 범위, 방법, 기간을 특정해야 하며 감청으로 알게 된 사실을 누설하면 형사처벌을 하는 등 감청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통제장치를 두고 있다.

인터넷 회선 감청이 기존의 압수수색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비밀 카페나 게시판의 이용, 메신저 사용 등을 통한 범죄를 조기에 발견하고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용한 면이 있다. 따라서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하기보다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고 있는 다양한 통제장치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검증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며 이에 대한 절차, 제도,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