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타이틀리스트 골프공

  • 동아일보

미국인 필 영은 어느 날 골프장에서 퍼트를 제대로 했는데도 공이 생각과 다르게 삐뚤삐뚤 움직여 점수가 나빴다. 골프공 속이 궁금해진 그는 친구의 병원에서 X선 촬영을 해봤다. 뜻밖에도 고탄력 고무로 만든 코어의 모양이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다. 코어를 일정하게 하면 골프공의 일관성도 향상될 것으로 결론 내린 그는 1932년 골프공 회사 ‘타이틀리스트’를 차렸다. 여기서 만든 골프공은 1949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탱크’ 최경주, ‘파이널 퀸’ 신지애 선수도 이 공으로 우승했다.

▷타이틀리스트가 한국 기업의 품에 안긴다. 타이틀리스트 골프공과 함께 풋조이 골프화 브랜드를 갖고 있는 골프용품업체 어큐시네트를 ‘토종펀드’ 미래에셋PEF(사모펀드)와 휠라코리아 컨소시엄이 인수하게 됐다. 덕분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통산 100번째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골프 강국 한국이 골프용품 강국의 지위도 추가하게 됐다. 국내 컨소시엄은 인수 경쟁에서 골프용품회사 테일러메이드를 거느린 독일 아디다스그룹,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과 컨소시엄을 이룬 미국 캘러웨이골프 등 거물들을 모두 꺾었다.

▷보통 기업 인수합병(M&A)은 전략적 투자자(SI)가 주도하고 기업 경영보다 투자 수익에 관심을 갖는 재무적 투자자(FI)가 자금을 댄다. 이번에는 재무적 투자자인 미래에셋이 인수 대상을 분석한 뒤 기업 경영을 맡을 전략적 투자자로 휠라코리아를 참여시켰다. 지분 100% 인수대금 12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는 미래에셋과 PEF가 6억 달러를, 휠라코리아가 1억 달러를 내고 산업은행 등에서 5억 달러를 차입해 해결한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브랜드 1위 기업을 사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국내 자산운용사가 글로벌 무대 진출에 성공해 이런 인수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운영을 맡을 휠라코리아는 강점인 의류 부문과 타이틀리스트 브랜드의 결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M&A는 국내서는 쌓아가기 어려운 원천기술과 브랜드 파워를 일거에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본 기업들도 최근 강세가 된 엔화를 무기로 해외 M&A에 본격 나서고 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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