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자살 쇼크 KAIST ‘휴머니즘 교육’이 아쉽다

  • 동아일보

지명훈 사회부 기자
지명훈 사회부 기자
올해 들어서만 학생 3명이 잇따라 자살한 대전 유성구 KAIST에서는 요즘 자살의 원인과 배경, 해법을 놓고 숱한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학생들은 학교의 무리한 개혁 정책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07학번 K 씨는 학생게시판을 통해 “자살의 원인이 여러 가지라지만 학생인 만큼 학교 스트레스가 요인”이라며 “학점이 낮은 학생에게 (차등) 부과하는 등록금 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1일 오후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이모 씨(1학년)는 ‘서남표 월드 사회적 타살’이라는 글을 통해 “(서 총장이) 학교를 기업으로 알아 이사회에 연구직 출신 이사는 단 한 명도 안 두고 있다”며 최고경영자(CEO)적인 학교 운영과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학생 정책을 비판했다.

일부 학생은 과학고에서 KAIST로 이어지는 진학 시스템에도 비판을 제기했다. KAIST에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 중고교를 다니고 KAIST에 와서는 더 큰 경쟁 속에 빠져 삶의 목표, 사랑, 우정 등 인간적인 부분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학생들은 학교생활이 숨 막힐 정도로 여유가 없고 각박해졌다는 데 공통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성적 나쁜 학생에 대한 등록금 부과, 8학기 내에 졸업하지 못한 연차초과자의 학업 제한 등 각종 학생 개혁 정책으로 상당수 학생이 쫓기는 듯한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인 것 같다.

물론 학교 측은 이번 사건으로 KAIST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기 위한 개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방침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등록금 정책만 해도 학업 분위기 조성과 함께 (국민) 세금으로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해 도입한 것”이라며 “부정적인 면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방침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맞다. 또 이번 연이은 자살의 원인이 학교의 무리한 경쟁의식 및 제도 때문이라고 밝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KAIST는 학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학교는 성적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만드는 공적인 책무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연이은 자살의 원인이 무리한 학교 정책과 그로 인한 학교 분위기 때문이라면 그렇게 해서 얻은 ‘세계 일류 대학’이란 타이틀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분별한 ‘평준화’도 문제지만 교육이 다소 ‘인간의 얼굴’을 한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대전에서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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