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순망치한(脣亡齒寒)과 北-中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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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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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고려대 정책대학원장·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책대학원장·정치외교학과 교수
작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엄청난 북한의 도발이 있었을 때 한국인들이 당혹해한 것은 ‘왜 중국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집단적 제재에 동참하지 않느냐’였다. 많은 한국인은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 최대 투자국, 최다 방문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명약관화한 군사적 도발에 제재의 수위를 완화시킨다거나 은근히 북한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분노했다.

北-中안보이익이 경제이익 압도

그러나 한국인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이익은 안보와 지정학적 이익이 경제적 이익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라질 것이다. 한반도가 중국에 갖는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를 단순명료하게 일러주는 고사성어가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다. 순망치한은 춘추전국시대 조양자(趙襄子)가 조나라가 없어지면 한(韓), 위(魏)나라도 위험해진다고 설파한 데서 나왔다. 한중관계사에서 순망치한론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 인종 때다. 고려 사신은 남송(南宋) 사신에게 고려가 없어지면 남송은 당시 최강국인 금(金)과 바로 대치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순망치한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출병하게 된 것은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조선이라는 입술이 없어지면 바로 이빨인 명나라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6·25전쟁 시 북한군이 괴멸 직전에 이르렀을 때 마오쩌둥은 순망치한이라는 말로 중공군의 참전을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6·25전쟁 이후 순망치한의 논리는 북한의 생존을 보장해온 중국의 기본 논리였고 그러한 중국의 지원은 한반도 분단을 60년 넘게 장기화시키고 있다.

1989년 냉전체제가 무너진 이후에도 북한이 생존하고 있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순망치한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소련의 입술이었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졌을 때 소련제국도 붕괴하고 러시아 공화국으로 체제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보다 경제적으로 더 비참했던 북한이 냉전 해체 후 30년 넘게 생존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세계 최강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해 주는 소중한 입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이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도 중국은 국제적 제재 조치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지 않게 뒤에서 도와주었던 것이다.

조지 W 부시 정권의 강권으로 중국이 6자회담 호스트 국가가 되어 각국 대표들을 베이징에 모아주기까지 했으나 중국은 북한 핵 폐기와 교환하여 북-미 외교관계 수립과 미국이 주도하는 대규모 대북원조라는 공식으로 6자회담을 타결하려고 서두르지 않고 회담을 질질 끌어나갔다. 왜냐하면 6자회담이 타결되면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편입될 것이고 이는 북한이라는 입술을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을 미국의 대중국 안보 전진기지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중국에 중대한 안보위기를 야기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韓中경제협력 높아져도 변치않아

6·25전쟁 이후 중국의 일관된 동북아 전략은 ‘현상 유지’이다. 물론 중국은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 천안함과 연평도 군사도발 그리고 3대 세습에 대해 실망, 좌절, 경멸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켜 초래될 입술의 상실과 동북아 안보질서의 급격한 변화는 중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선뜻 대북 제재에 나서지 못하고 북한 정권의 존속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 이후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겪으면서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시발로 해서 중국식 자본주의 발전을 시도하였는데, 때마침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맞아떨어져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고 이후 물꼬가 트인 한국의 대중국 투자는 중국에 ‘때맞춰 내린 비’ 같은 존재였다. 그때만큼 소국인 한국이 대국인 중국에 큰소리친 적이 없었다. 급기야 많은 한국인은 한국의 경제적 중요성 때문에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할 것이고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 공조에 협력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면서 중국에 투자한 한국 자본은 더는 한국 정부의 대중국 외교자산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1990년대와 달리 전 세계가 중국에 투자하려고 경쟁하는 마당에 한국의 투자가 대중외교의 압력수단이나 유인이 될 수 없다. 중국이 한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이 걸린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는 ‘입술’ 국가인 북한을 뒤흔들 정권교체나 체제 전환을 시도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한국의 경제적 가치 때문에 중국이 안보적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할 것이라는 경제주의적 사고를 해서는 안 된다. 순망치한이 북-중 관계를 지배하는 한 북한붕괴론, 미국식 북핵해결론, 정권교체론 모두가 소망적 사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이론에 기초하여 세워진 대북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임혁백 고려대 정책대학원장·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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