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규]이북 5도청 대대적 쇄신이 필요한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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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한국외교협회 회장
김용규 한국외교협회 회장
필자는 연초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 등 지도급 인사들이 이북 5도청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사진을 보았다. 이런 방문은 대한민국이 김정일 세습 독재하에서 학대와 굶주림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한 애정과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결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진 속 이북 5도청 지도자들의 면면과 이북 5도청 홈페이지에 있는 그분들의 인사말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인 탈북자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아닌데” 하는 나의 평소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1949년 이북 5도청을 만들 당시 남북 간에서는 민간 차원의 남북한 교류는 사실상 전무했고, 간혹 있는 북한 주민의 남한 탈출과 귀순의 경우 국민적으로 환영하는 시대였다. 오늘날 같은 대규모 집단 탈북은 없었다. 따라서 이북 5도청 지도부도 6·25전쟁 당시 남하한 실향민 1세들을 주축으로 구성돼 왔으며, 그동안 실향민을 대변하는 기구로서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현재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2만 명을 넘어섰으며, 북한을 탈출해 중국 등에서 삶을 찾아 헤매고 있는 많은 탈북자까지 고려하면 북한이탈주민 수가 사실상 얼마나 되는지 추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이북 5도청의 역할과 기능, 구성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서적으로도 이미 대한민국 국민인 실향민 1세가 주축인 이북 5도청 지도부가 과연 치열하게 살아가는 북한 주민의 삶을 절감할 수 있고 어떠한 실질적 지원책을 제시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연례행사처럼 타성적으로 이북 5도청을 방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것도 아닌데” 하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왜 이북 5도청이 있어야 하며, 그 지도부는 어떤 사람으로 구성돼야 합당한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북 5도청은 지난 60여 년간 800여만 명의 이북 실향민의 정착과 복지를 위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따라서 그동안 이북 5도청을 이끌어 온 1세대 실향민은 명예 퇴진하고, 이제는 북한 실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현재 북한에 부모 형제자매를 두고 있는 오늘의 탈북자들이 이북 5도청의 중심이 돼 2세대 이북 실향민들의 정착 지원과 북한 동포의 생존 환경 개선에 앞장서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탈북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며 우리 정부도 북한 주민을 위한 좀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 아니 우리가 원하는 자유와 민주 통일의 길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수많은 탈북자 형제자매를 통한 대북 주민정책을 세우고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중동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 시위를 보면서 그런 시민운동이 북한에서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목숨을 걸고 남으로 온 탈북자들을 통해 그 불씨를 지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부는 이북 5도청의 설립 취지를 다시 검토해 오늘의 실정에 맞게끔 대대적으로 정비해 남북통일을 실질적으로 진전시켜 나가는 중심축의 하나로 키워야 한다. 우리 국민도 탈북자 형제들을 가슴으로 껴안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하겠다. 저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북한 주민을 돕고,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 해방을 위한 첫걸음을 더욱 적극적인 탈북자 지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김용규 한국외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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