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착한 가격’의 함정

  • 동아일보

김상수 산업부 차장
김상수 산업부 차장
월마트가 들어서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까. 아니면 기존 업체들이 무너질까.

월마트가 최저가 정책을 쓰면 물가가 낮아질까. 월마트와 거래하는 회사들은 재정이 좋아질까.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꼽은 베스트셀러 ‘월마트 이펙트(효과)’의 저자인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찰스 피시먼은 이런 의문점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다.

직원 160만 명에 세계적으로 해마다 70억 명 이상이 매장을 방문하는 거대 기업. 미국 전체 소매업의 25%를 장악하고 6만여 개의 공급업체(납품업체)를 갖고 있는 ‘공룡’. 그런 월마트의 사업방식이 미국과 세계인의 일상생활에 미친 크고 작은 변화가 바로 월마트 이펙트다. 재래 상점의 생존을 위협하고 소비자들을 위해 공급업체에 가격 인하를 강요하는 것 또한 월마트 이펙트다.

수년간의 취재와 연구 끝에 저자가 내놓은 결론은 이렇다. 월마트가 상품가격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상품가격의 7∼13%를 낮추며 물가상승률을 억제한다. 하지만 그 외는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월마트가 끊임없이 최저가 정책을 유지하면서 인건비는 삭감되고 공급업체들은 더 싸게 물건을 대기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직원 수를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7∼2004년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20% 가까이 줄었는데 월마트의 값싼 중국산 상품 수입량은 같은 시기 200%나 늘었다.

월마트는 매년 5%의 가격 인하 압박을 공급업체에 가하기 때문에 거래를 하면 할수록 공급업체의 이윤도 감소한다. 자신들이 파는 상품 가운데 월마트와의 거래량이 10% 이하인 기업은 평균 12.7%의 이윤을 유지한 반면 거래량이 25% 이상인 기업은 이윤이 7.3%로 낮았다.

물가를 잡기 위한 정부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유통업체가 생필품의 가격을 잇달아 낮추고 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를 불러들인 뒤 대형마트들은 라면 밀가루 우유 삼겹살 등 생필품의 가격을 1년간 동결하거나 수개월 동안 ‘착한(싼) 가격’으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압박을 받는 유통업체가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외국에서 싼 물건을 들여와 팔거나 납품업체의 손목을 비트는 일이다. 이미 대형마트들은 삼겹살 등 육류와 수산물을 중심으로 해외 직소싱을 늘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제조업체에서 공급받는 생필품들이다. 손해 잘 안 보는 유통업체들이 납품업체에 가격을 전가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규모 소매점(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과 거래하고 있는 납품 중소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2.8%가 “과거와 같은 불공정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고 답했다. 불공정 행위의 유형으로는 첫째가 ‘(가격을 크게 낮춘) 특판행사 참여 강요’(36%)였고 둘째가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34%)였다.

그동안의 관행으로 볼 때 정부가 유통업체를 몰아붙이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납품업체가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협력업체들의 동반성장을 유도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취지와도 배치되는 것이다.

3년여 전인 2007년 10월 권오승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형마트들의 파격적인 가격인하 경쟁에 대해 “소비자에게는 좋은 것이지만 그 부담을 제조업체에 전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고 경쟁 관계에 있는 중소 유통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대형마트들을) 조사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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